(1) 아쉬운 정치구 심력 - 본사외신부장 박경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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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미리 짐작은 했었지만 월남 여러 곳을 두루 돌아보고 새삼 놀란 것은 이 나라 국민의 얼굴표정이 너무도 원색이라는 것이다.
좋게 말하면 희노애락을 초월한 도사 같은 얼굴이고 심하게 말하면 조건반사능력조차 의심스러울 지경으로 허탈상태에 빠진 것 같은 얼굴들이었다. 이런 얼굴은 「사이공」시를 누비는 「오토바이」대열에서, 「메콩·델타」의 재 건촌 요원에게서, 그리고 중부 「퀴논」의 농민에게서 똑같이 볼 수 있었다.
이 「원색의 얼굴」들을 보고, 그 동안 월남국민들이 겪은 고초와 시련을 피부로 느꼈고, 또한 월남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은 이 「원색의 얼굴」을 어떤 방법으로 총천연색의 얼굴로 바꾸느냐에 있다고 보았다.
월남전은 크게 보아서 미국의 대 중공 봉쇄정책의 일환으로서 불붙은 국지적 열전으로 복잡한 국제적 성격을 띠고 있지만 문제해결의 열쇠는 어디까지나 월남인 자신이 가지고 있으며 또한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이것은 나중에 「전세란」에서 소상히 다루겠지만, 군사정세는 이제 연합군이 주도권을 쥐고 있어 불패의 입장에 있는 만큼 이 기회를 이용해서 월남위정자들이 정치적 구심력을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요긴한 과제라고 느꼈다.
사실 월남은 1963년 11월 「고딘·디엠」정권이 무너진 이래 일종의 과도적인 정치적 진공상태에 직면했다. 몇 차례의 「쿠데타」와 반「쿠데타」의 소용돌이 속에서 1965년 6월 19일 「구엔·반·티우」와 「구엔·카오·키」의 군사정권이 등장,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러나 정치적인 격동은 비단 월남뿐만 아니라 아·아의 후진국가들이 다같이 겪는 공통적인 진통이기는 하다. 몇 가지 예를 든다면 건국의 어버이들인 인니의 「수카르노」, 「가나」의 「응크르머」, 「알제리」의「벤·벨라」, 그리고 한국의 이승만 박사 등이 군부세력에 의해 권좌에서 물러났고 그후 필연적으로 정치적인 구심력을 잃어 과도적인 혼란을 맛본 것이다.
월남도 예외는 아니지만 전쟁 때문에 그 혼요와 고통이 더 심화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건국의 어버이들로 상징된 정치적 구심점을 하루빨리 되찾는 일은 아·아 국가들이 초미의 가제이며 월남은 전쟁을 치르고 있기 때문에 더욱 다급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9월 3일의 대통령 선거는 확실히 월남의 앞날을 좌우하는, 다시 말해서 「고·딘·디엠」 대통령 사망이래 잃었던 정치적 구심점을 찾느냐 못 찾느냐를 판가름하게 될 것이다.
월남에는 너무도 대립요소가 많다. 두드러진 것만 들어봐도 빈부의 극심한 차, 각 종교단체간의 반목, 북부와 중 남부 출신인사들의 대립, 군부와 민간정치가들의 알력, 농촌과 도시의 심한 격차, 오만한 청장년관료들과 연로 자들의 「갭」등등.
이런 대립세력들을 통틀어 서로 손을 부여잡게 해주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최대공약수를 찾아 격차를 좁혀주는 일, 이것은 역시 정치력에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이래서 9·3선거에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티우」와 「키」를 한「팀」으로 묶어 출마시키는데 있어 한차례 벅찬 시련을 겪었다.
대부분 월남사람들의 견해나 또는 직접 현지에서 본 바로는 육군을 배경으로 한 「티우」원수와 공군과 해병대를 등에 업은 「키」수상이 끝내 합심해서 9·3선거를 치른다면 월남은 「희망」이 있으며 그렇지 못하면 전도는 암담하다는 것이다.
이미 「사이공」시 곳곳에 후보자 사진이 나붙고, 재 건촌 요원들의 선거계몽도 한창인데 11명의 입후보자중에서 「티우=키」「팀」이 압승 하리라는데 견해가 일치되고 있다. 약 40분간 우리 일행과 환담한 「티우」원수도 선거결과를 낙관하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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