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시론

지구촌, ‘탄소 다이어트’하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

우리나라 성인 가운데 체질량지수가 25 이상인 비만인구는 3명 가운데 1명꼴인 1209만 명이다. 2010년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다. 체질량지수가 30이 넘는 고도비만 인구는 12년 사이 두 배나 늘었다. 비만이 늘어나는 이유는 많이 먹고 적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열량은 높지만 영양가는 낮은 식품도 비만의 원인으로 꼽힌다.

 그렇다면 지구도 우리 몸처럼 비만 상태에 있는 것은 아닐까. 기후변화는 지구가 정크 푸드처럼 건강에 치명적인 탄소를 너무 많이 섭취해서 생긴 문제다. 대기권으로 뿜어져 들어오는 이산화탄소 농도는 이미 396ppm을 넘어섰다. 올해 2월 하와이 관측소에서 측정된 값이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빙하기와 간빙기가 반복됐던 지난 65만 년 동안 이산화탄소 농도가 이처럼 높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국제사회가 기후변화 협상을 통해 합의한 목표는 지구의 기온이 산업화 이전과 견줘 2도 이상 올라가는 것을 억제한다는 것이다. 빠르게 늘고 있는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이 2018년부터는 줄어들어야 달성 가능한 목표다. 출렁이는 지구의 뱃살을 뺄 시간이 고작해야 5년 남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목표와 현실, 과학과 정치 사이에는 큰 간극이 존재한다. 대다수 정치가들은 지구가 비만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탄소 다이어트’에는 관심이 없다.

 정치가들의 무관심과 게으름에는 그만 한 이유가 있다. 다이어트는 엄청난 고통을 수반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이어트에도 여러 방법이 있다. 무조건 적게 먹거나 굶는다고 해서 살이 빠지지는 않는다. 꾸준한 식이요법과 스트레칭을 통해 다이어트는 고통이 아니라 기쁨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도 많다. 예능 프로그램 ‘인간의 조건’에서 개그맨 김준호는 “자동차로 갈 수는 있어도 느낄 수는 없다”는 말로 ‘자동차 없이 살기 1주일’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자동차를 버린 순간 자동차 바깥으로 펼쳐진 세상의 진가를 알게 된 것이다.

 자동차는 몸속에 칼로리를 저장하고 싶은 사람들에겐 안성맞춤인 물건이다. 하지만 자동차를 타면 포근한 봄바람과 가로수들이 뿜어내는 신록의 내음은 포기해야 한다. 얼마 전 자전거 타기 고수로 꽤 알려진 한 주부는 이렇게 말했다. “자전거를 타다 보니까 자동차 문화가 주는 목적 중심의 문화에서 과정 중심의 삶으로 시선이 바뀌는 거예요.” 나 자신과 지구를 위해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은 다이어트를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하지 않는다.

 사실 탄소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삶은 없다. 우리는 먹고, 입고, 자고, 씻고, 일하고, 이동하는 모든 과정에서 탄소를 내뿜는다. 중요한 건 그 대가를 지불할 의사가 있느냐는 것이다. 자동차를 편리한 생활을 보장해주는 보험증서처럼 여기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체중계 위에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아니면 시간과 돈을 투자해 살 빼기에 돌입하거나. 유럽의 몇몇 국가에서 도입한 ‘비만세’처럼 탄소세를 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지구 구성원들은 정확히 자신의 생존에 필요한 만큼만 자연에서 얻어 소비한다. 하지만 예외도 있으니 바로 우리 인간이다. 역사 속에서 인간은 다른 생명체들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인간의 존재 이유이자 목표는 필요를 넘어선 축적, 다시 말해서 욕망의 끊임없는 확대재생산이었다. 그런 점에서 탄소 다이어트는 ‘욕망의 다이어트’이기도 하다. 지구의 날(22일)을 맞아 생각해본다. 인류는 기후변화와의 전쟁에서 승자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녹색을 진정한 ‘자유’로 받아들이면서, 멋있고 세련되고 즐겁게 욕망을 다이어트하려는 호혜적 인간들의 등장을 예감하기 때문이다.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