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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짝퉁이 거의 없네 … 중국차 ‘창조 드라이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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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20일 상하이모터쇼 언론 사전공개 행사장에서 처음 공개된 중국 SUV브랜드 하발의 신차 H7. 외관이나 내부 인테리어 모두 해외 유수의 SUV들에 뒤지지 않았다. [박진석 기자]

정확하게 30분이었다. 19일 상하이푸둥국제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도로 위에서 중국 토종브랜드의 세단을 처음 볼 때까지 걸린 시간이다. 치루이(奇瑞)자동차의 준중형차 ‘치윈(旗雲)3’를 발견하기 전까지 눈에 들어온 차량들은 거의 전부가 폴크스바겐·메르세데스-벤츠·뷰익·도요타·현대·기아 등 해외 브랜드였다. 예상보다 성장이 더딘 중국 자동차 산업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듯했다.

 중국 자동차 산업은 이중적이다. 세계 최대 자동차 생산국(연산 1927만 대)이지만 국제적 수준의 자체 브랜드는 없다. 중국 차산업의 주류는 합자기업들이다. 상하이(上海)GM·이치(一汽)폴크스바겐·베이징(北京)현대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외국차를 중국 내에서 생산하기만 할 뿐 중국 브랜드라고 보긴 어렵다. 진짜 중국차 업체들은 치루이·BYD·지리(吉利)·창청(長城)·장화이(江淮)·장링(江鈴)·하이마(海馬)·바오쥔(寶駿) 등 자체 모델을 만드는 업체들이다. 상하이자동차(上海汽車)그룹 등 산하에서 합자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인 기업들도 간간이 자체 모델 차량을 만든다. 중국 정부와 언론은 이 두 종류의 기업들에 대해 ‘자주품패(自主品牌)’라는 호칭을 붙여주면서 토종 브랜드로 인정한다.

 하지만 이들의 성적은 만족할 만한 수준이 못 된다. 중국에서 올 1분기 토종브랜드의 시장 점유율은 43.3%다. 지난해 동기보다 소폭 상승하긴 했지만 여전히 전체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상용차를 빼고 승용차만 계산할 경우 상황이 더 나빠진다. 1만4436대를 팔아 토종브랜드 1위를 차지한 지리자동차의 ‘디하오(帝豪) EC7’은 전체 18위에 불과했다.지난해 1년 전체를 봐도 토종 모델은 10위권에도 들지 못했다. 기술이전의 부진, 토종 브랜드 난립, 브랜드 가치 저하 등으로 인한 전반적인 품질력 미비가 큰 이유로 지목된다. 실제 한국에서도 중국차라고 하면 여전히 안전도가 떨어지거나 외국차 디자인을 베낀 ‘짝퉁차량’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인 상황이다.

 하지만 제15회 상하이모터쇼(Auto Shanghai 2013) 개막 하루 전인 20일 언론 대상 사전공개 행사장에서 만난 중국 토종 차량들은 판매부진 현황이나 기존 고정관념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외관이나 ‘스펙’에서 해외 브랜드에 비해 손색이 없어 보였다. 현대차 투싼의 앞모습을 그대로 본뜬 듯한 차량 등 복제품 의혹을 받는 차들도 간혹 눈에 띄었지만 이전보다는 크게 줄었다. 현장을 찾은 한국 관계자들이 “예전보다 ‘짝퉁’이 별로 안 보여 재미가 없다”고 농담을 할 정도였다.

① 중국 기자들이 20일 상하이모터쇼장에서 중국 차로는 최초로 유럽 수출이 예정돼 있는 코로스자동차의 Q3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② 중국 바오쥔자동차의 준중형 승용차 바오쥔630이 20일 상하이모터쇼장에 전시돼 있다. ③ 포르셰가 20일 상하이모터쇼장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한 2세대 파나메라 4S이그제큐티브.

중국 세단형 승용차 판매 1위 차량인 디하오EC7에 앉아봤다. 길이 4635㎜, 축간거리 2650㎜로 준중형에 가까운 이 차는 착좌감이나 편의사양 등에서 한국차에 결코 떨어지지 않아 보였다. 복합연비도 L당 12.9㎞로 준수했다. 비슷한 급의 ‘바오쥔(寶駿)630’은 복합연비가 13.5㎞/L로 현대차 ‘아반떼’(13.9㎞/L)와 비슷하다. BYD의 신형중형차 ‘쓰루이(思銳)’의 경우 1.5L 터보엔진이 장착돼 154마력의 파워를 낸다. 중국차들이 엔진다운사이징 측면에서도 상당한 역량이 있음을 과시한 셈이다. 창청의 SUV브랜드인 하발(Haval)의 2L급 신형 SUV인 ‘H7’은 외관이나 내부 인테리어 모두 해외 유수의 SUV들에 뒤지지 않았다.

 편의사양들도 뛰어났다. 대부분의 차들이 스마트키와 내비게이션, 360도 어라운드뷰, HUD(앞 유리에 주행 정보를 표시하는 장치), 원격시동시스템 등 최첨단 편의사양들을 장착하고 있었다. 또 중국차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인식됐던 안전도를 전면에 내세우는 업체가 늘었다는 점이다. BYD는 중국의 자동차 안전도 검사시스템인 C-NCAP에서 최초로 별 다섯 개를 받은 SUV차량 ‘S6’의 일부분을 뜯어내 내부 단면을 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내구성에도 자신이 붙은 듯 화타이(華泰)자동차의 준대형차 ‘B11’은 5년·15만㎞의 파격적인 장기보증 푯말을 내걸었고, 상당수의 차들이 “10만㎞까지 보증한다”는 문구를 차 뒷면에 붙여 놓았다. 대부분 업체들이 초록색으로 채색된 하이브리드 차량이나 전기차를 몇 대씩 전시하고 있다는 점도 특기할 만했다.

 치루이의 신차발표회는 특히 눈길을 끌었다. 차도 차지만 특별하게 영입된 해외 인재들의 면면이 입을 딱 벌어지게 했다. 포르셰에서 ‘카이맨 박스터’와 ‘918스파이더’ 등의 설계를 담당했던 하칸 사라코글루, 스마트와 메르세데스-벤츠의 수석엔지니어였던 클라우스 바덴하우젠, BMW·GM·벤츠 디자이너였던 세르지오 루레이로 등이 잇따라 연단 위에 올라왔다. 치루이는 이들의 힘을 빌려 ‘iAuto(인텔리전스 자동차)라는 신기술 개념을 제시하면서 2020년까지 해외 유수 브랜드와 같은 수준으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치루이로 대표되는 중국차 업계의 꿈은 이뤄질 수 있을까. 양론이 엇갈린다.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데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국내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중국차가 한국차를 따라오려면 최소 10년은 걸린다”고 단언했다. 또 다른 완성차 업체 관계자도 “중국 업체들이 소수의 고품질 차량을 만들어낼 수는 있겠지만 수만~수십만 대를 균일한 품질로 양산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시기가 문제일 뿐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도 정부의 의지가 강하다. 12차 5개년 계획(2011~2015)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현재 수십 개 업체가 난립 상태인 자동차 업계를 연산 300만 대 이상의 대형그룹 2~3개사와 연산 150만 대 이상의 중견 그룹 4~5개사 중심으로 구조조정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해외수출도 지난해 처음으로 100만 대를 넘어섰다. 코로스자동차의 Q3는 중국차로는 처음으로 유럽 수출을 앞두고 있다. KOTRA 상하이사무소의 김명신 차장은 “업체들이 품질 제고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고, 중국 정부의 의지도 강해 예상보다 빨리 중국차의 경쟁력이 향상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중국 치루이자동차의 천안닝 공정연구개발원장은 “해외 우수 인력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면서 기술과 디자인 격차를 크게 좁혔다”며 “머지않아 세계적 자동차 메이커들과 중국 업체가 동등한 위치에 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하이=박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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