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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러」사절 중간 평점|증파 설득에 얽힌 미국 외교의 시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존슨」 미국 대통령의 특사 「테일러」·「클리포드」일행은 2일 서울에 도착하기 전 월남·「타일랜드」·「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등 월남참전 우방 국가들을 방문했다. 「테일러」·「클리포드」 특사의 참전국 순방의 목적에 관해서는 미국이 「공식적으로」 밝힌 목적과 비공식적으로 알려진 「사실상」의 목적이 뒤얽혀 이설 분분하다. 그러나 이것도 없이 7월초 「맥나마라」 국방장관의 참전국들로 하여금 파월 병력을 늘리도록 설득하는 일이다. 여기서 흥미 있는 일은 한마디로 파월 병력의 증가를 위한 설득이라고는 해도 상대에 따라 그것이 호소일 수도 있고 은근한 압력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서울 도착 이전의 「존슨」특사의 설득 행각의 성과가 비상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각도에서 「존슨」특사의 실적에 「중간평점」을 매겨본다면 그것은 결코 만족할만한 성과라고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특히 이들 특사에 대한 「필리핀」과 「타일랜드」의 태도는 주목할만한 것이었다.
「방콕」의 정통한 소식통들의 말에 의하면 「타일랜드」외상 「코만」은 무더위 속에 찾아온 「테일러」·「타일랜드」는 이 이상 더 월남에 병력을 파견할 수 없음을 통고했을 뿐 아니라 한발 앞질러 지금 한창 논의중인 제2차 참전국 정상회담의 필요성까지 인정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고 한다.
서구 식민지 세력이 「아시아」로 첫 손을 뻗던 시절부터 실리를 위주로 하는 「타일랜드」의 능숙한 현실외교는 이름을 떨쳐왔지만, 초연 자욱한 월남의 문턱에서 유감없이 전쟁경기를 누려오는 「타일랜드」가 미국의 문턱에서 유감없이 전쟁경기를 누려오는 「타일랜드」가 미국의 설득에 주저없이 「불가」를 입밖에 내어 말했다는 사실은 월남전을 빨리 해치우기 위한 미국의 외교에 불길한 징조가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눈을 「마닐라」로 돌리면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는 것 같다. 「필리핀」은 「존슨」특사의 내방조차도 막았다. 이번 설득 행각 중에 「테일러」·「클리포드」 일행이 「마닐라」를 제외한 것은 「마르코스」대통령의 월남 방문 중에 이미 미·비·월 3국간에는 필요한 대화가 끝났기 때문이라고 발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발표에 앞서 「마닐라」의 신문들은 「필리핀」이 참전국 정상회담에 관한 협의로부터 빼돌림을 당하고 있다는 불평을 요란하게 터뜨렸다.
뿐 아니라 「마르코스」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구미 세력에 대한 「필리핀」의 자주성을 강조해왔다.
이런 사정을 종합하여 미루어보면 「마닐라」가 「테일러」·「클리포드」일행의 여정에서 제외된 것은 반드시 공식 발표처럼 두 나라의 합의에 의한 것만은 아닌지도 모른다.
특히 지난봄 이래의 「필리핀」의 외교적 움직임을 보면 지금까지의 미국을 강력하게 의식하는 「눈치외교」의 굴레를 벗어나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지난 봄부터 「필리핀」이 「방콕」과 「카이로」서 소련과 통상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을 벌여 온 것은 이제 비밀이 아니다.
「필리핀」국회의원 사절단은 7월말 소련을 방문했다. 통상협정의 체결이 외교관계 수립의 첫걸음이 된다는 일반적인 통례가 비·소 관계에도 들어맞을지 어떨지는 모를 일이로되 「필리핀」의 이러한 자주적인 움직임이 미국의 비위에 맞지 않을 것은 틀림없다. 우연의 일치인지, 「존슨」특사의 여정 중에 이렇게 잡음이 들려오는 것은 전투부대를 보낸 나라가 아니라 비전투 부대를 보낸 나라들이라는 사실도 또한 흥미롭다.
「타일랜드」와 「필리핀」이 미국의 확고한 영향권 안에 들어있는 것은 부인 못할 사실이다. 그러나 이 두 나라는 어느 한계 안에서나마 「끝이 없는 전쟁」에 대한 개입을 국가이익과 국내정치 사정의 선에 조화시키려는 노력을 쉬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미국은 증원군을 얻고 못 얻고의 문제가 아니라 「태평양시대」라는 화려한 깃발을 내걸고 추진해 온 「아시아」반공 세력의 결속에 어떤 차질을 감수할는지도 모른다. 지난봄 반공 우방인 「말레이지아」가 소련과 외교관계를 수립할 때 벌써 그런 징조는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김영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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