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합하다 한 번 적발되면 망한다는 인식 심어줄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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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18일 인사청문회에서 답변하고 있다. [김형수 기자]

공정위가 ‘담합과의 전쟁’을 선언했다.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는 1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담합하다 한 번 적발되면 기업이 망한다는 인식을 심어 주겠다”고 말했다.

 노 후보자는 이를 위해 가격 담합행위에 대한 집단소송제를 도입, 손해배상소송을 활성화하겠다고 밝혔다. 또 중소기업청과 조달청 등에 고발요청권을 부여해 형사 제재를 강화하겠다고도 했다. 그는 “‘담합은 한 번 적발되면 기업이 망한다’는 인식이 확실히 자리매김하도록 관련 규제를 재설계하고 과징금의 실질부과율을 상향하며 조사인력도 확충하겠다”고 강조했다.

 담합 감시는 공정위의 핵심 책무다. 그러나 제도적 허점이 효과를 반감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담합을 주도한 업체들이 자진신고할 경우 과징금을 깎아 주는 ‘리니언시(leniency)’ 제도를 활용해 과징금과 처벌을 피해 온 게 대표적이다. 공정위 스스로 담합에 너무 관대하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아 왔다.

최근 ‘4대 강 사업’ 담합조사를 두고도 이런 논란이 일었다. 지난해 6월 공정위는 현대·대우·포스코·대림·GS·SK건설·삼성물산·현대산업개발 등 8개 대형건설사가 4대 강 살리기 사업에서 입찰담합을 한 사실을 밝혀내고 시정명령과 함께 1115억원의 과징금을 부여했다. 하지만 감사원은 지난달 4대 강 입찰 담합조사가 부실하다며 공정위에 대한 감사에 전격 착수했다. 이들이 따낸 4조원대의 공사대금과 비교해 과징금이 1000억원대로 적고, 이후에도 이들 건설사의 관급공사 참여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 등이 지적됐다. 이런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선 담합기업에 과징금과 형사처벌은 물론 사업 제한이라는 재갈까지 물려야 한다는 게 공정위의 입장이다.

 이에 대해 단국대 강명헌(경제학) 교수는 “담합은 당연히 엄단해야 할 일”이라면서도 “공정위의 움직임이 최근 한국 사회에 거세게 불고 있는 경제민주화 바람에 지나치게 영합하는 게 아닌지 염려된다”고 말했다.

 노 후보자는 또 ‘대기업 집단의 구조와 행태 시정’을 공정위의 중요 과제로 꼽았다. 그는 “대기업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행위나 경영권 세습 등의 관행을 근절하겠다”며 “총수일가의 지배력 감소 없이 대규모 기업을 인수하는 행위와 편법적인 경영권 세습행위를 막기 위해 신규 순환출자는 반드시 금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기업의 불공정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재벌 전담 조사조직을 신설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단, 재벌의 기존 순환출자는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대기업들은 노 후보자의 발언에 대해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가뜩이나 반기업정서 때문에 위축돼 있는데 ‘재벌 전담 조사국’까지 만든다고 하니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며 “담합 처벌이 강화되는 추세는 수긍하지만 ‘한 번 적발되면 망한다’는 표현은 너무 세게 나갔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최근 경쟁적으로 쏟아지고 있는 경제민주화 정책들이 기업 경쟁력 약화를 초래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글=최준호·이상재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리니언시(leniency)

공정거래위원회가 불공정행위로 적발한 기업의 과징금을 깎아주는 제도로 ‘자진 신고자 감면제도’라고도 한다. 담합을 저지른 기업이 담합 사실을 시인하고 공정위 조사에 협조하면 과징금을 깎아준다. 가장 먼저 자진 신고한 기업은 과징금을 100% 면제해 주고, 두 번째 신고한 기업은 절반을 깎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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