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 다시 탑건을 향해] 下. '성실' 승부구 마흔까지 GO!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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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팬 여러분께.

저는 진정 최선을 다해 다시 뛰려고 합니다. 지난해 부상으로 아무것도 못하고 있을 때, 이러고 있을 바에는 차라리 은퇴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은퇴는 저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죽을 각오로 다시 시작하자고 마음 먹었고, 주위에서 말리던 러닝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뛰면서 부상을 이겨내고 건강과 용기를 되찾았습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평온하고, 행복합니다.

제 소식은 경기장에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팬 여러분께 전달됩니다. 그러나 제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제 홈페이지에 남깁니다.

제가 저를 취재하는 기자 분들께 진실하지 않다는 말은 아닙니다. 진실합니다. 다만 하고싶은 말이 많지 않다는 것뿐입니다.

지금까지 언론으로부터 도움도 많이 받았지만 상처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를 담당하는 분들로부터 인간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을 얻었고, 또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 감명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언론 자체는 저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제가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하거나, 사실과 다른 내용을 전달할 때, 저는 상처를 받았고 저를 좋아하는 팬 여러분도 상처를 받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 홈페이지에서 직접적으로 팬 여러분과 만나고, 공감하고 싶습니다. 언론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기사의 방향이 제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는 말입니다.

저는 야구인이라고 해서 야구인들만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야구선수도 사람이고, 사람은 저마다 취미가 있으며, 직업 이외의 취미를 생각할 때 즐거워집니다.

저는 기업인도 만나고, 의사도 만나고, 서예선생님 등 다양한 전문직에 계신 분들과도 만납니다. 연예인들과도 만납니다.

그 분들은 제가 새로 만나고, 사귀게 된 벗들입니다. 저는 그 분들에게서 인간적인 면을 배우고, 어떤 때는 야구인들을 만날 때보다 더 편안함을 느낍니다. 그들이 야구인들보다 편안하게 느껴질 때는 제가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했다는 것 때문에 저와 비교당하는 야구인들의 안좋은 마음을 느끼고 부담감이 생길 때입니다.

야구하는 친구들이나 선배들을 멀리하고 싶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절친한 친구도 있고, 선배도 있습니다. 앞으로 더 친해지도록 노력할 겁니다.

저는 야구선수로서 오랫동안 현역으로 뛰고 싶습니다. 누가 목표를 물으면 늘 "오랫동안 선수로 뛰는 겁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지금 생각에는 마흔살까지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은퇴하고 나면 법과 심리학을 공부하고 싶습니다.

많은 분들이 결혼에 대해 긍금해 하십니다. 저도 여자를 사귀고 싶고, 결혼을 하고 싶습니다. 원정 갔다가 돌아오면 맛있는 된장찌개를 끓여놓고 저를 맞아줄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시즌 때는 정신이 없고 겨울에는 '이번 겨울만 잘 하면 더 발전된 내년이 온다'라는 생각 때문에 여유가 없고, 그래서 아직 상대도 없습니다. 인연이 되면 누군가 나타나겠지요. 저를 아껴주시는 팬 여러분,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이 글은 박찬호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한 말을 편지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이태일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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