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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마번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내무부는 멀지않아 집 번지를 바꾸는 일에 착수한다. 그 주거표시 개혁안에 따르면 번지에 의한 현재의 주소를 온통 정리해서, 가구에 따라 차례대로 집 번지를 매겨나간다. 이제야 「번지」는 제구실을 찾게 되나보다.
「번지」란 구청과 경찰서의 문서 위에서나 쓸모가 있을지, 누가 어디에 살며, 무슨 건물이 어디에 있다는 좌표적 의미로는 이제까지 별로 소용이 없었다. 번지를 가지고 누구의 집을 찾기란 그야말로 「남산에 올라가 이서방 댁을 찾는 것」과 같은 비유였다.
대구시 대신동 115번지는 무려 4천 호가 몰려 있다지 않은가. 통 반을 모르면 집 찾기는 아예 단념하는 편이 좋다. 서울의 경우도 홍제동 1번지는 1천 가구가 넘는다.
어느 경우엔 한집이 세 가지 번지를 갖는 수도 있다. 하나는 「산 몇 번지」하는 번지이고, 또 하나는 택지주소이고, 또 다른 하나는 국민주택 「몇 호」하는 번지.
지난해 우편물의 2%가 「주소확인불능」으로 발신자에게 되돌려진 것은 「난마번지」의 실정을 말해준다. 그것은 행정마비는 고사하고, 생활마비까지 가져올 우려가 있다. 약도라야만 주거지를 밝힐 수 있다면, 그건 확실히 선사시대가 연상되는 일이다.
그러나 문제도 없지 않을 것이다. 부스럼처럼 번진 밀집주택들을 어떻게 바둑판처럼 재단할 수 있는가. 「세 발 자전거」나 겨우 움직일 세도를 가로놓고 「구」라고 할 수도, 「가」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다.
계획이 있고 집이 있어야 순서다. 허물수도 밀어낼 수도 없는 집들의 「혼란」은 참 문제다. 먼저 택지정리계획을 세워놓고 여유 있게 번지를 바꾸어 가면 어떤가.
일본도 5년 전에 번지를 정리한 적이 있었다. 번지가 변경된 구역의 주민들은 일정기간 무료로 무제한 우편물을 발송할 혜택을 받았다. 번지변경 PR를 나라가 도와 준 것이다.
국가는 시민의 조그만 생활에도 이런 지혜를 생각해내야 한다. 시민의 박수를 받을 일이 「계획부재」로 좌절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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