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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고건의 공인 50년 (47) 거절의 수사학, 박인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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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1976년 1월 5일 광주시 동구 광산동 전라남도청 대강당에서 도청 시무식이 열렸다. 고건 전남도지사가 시무사를 발표하고 있다. 당시 전남도청은 광주시도 함께 관할하고 있었다. 전남도청은 2005년 전남 무안군으로 이전했다. [중앙포토]

“이 책상은 누구 자리입니까.”

 신임 도지사로 전남도청 안의 위치도 익히고 업무도 파악할 겸 각 부서를 돌았다. 관광운수과를 갔더니 과장 책상 옆에 빈 책상이 하나 있었다. 이상하다 싶어서 자리의 주인이 누구냐고 물었다. 그런데 모두 머뭇거리기만 할 뿐 답을 하지 않았다.

 호통 비슷하게 목소리를 높여 다시 물었다. “누구 책상입니까.”

 그제야 대답이 나왔다. “아, 그게…. 광주고속 직원의 책상입니다.”

 관광운수과는 전남의 버스 노선을 결정하는 부서였다. 어느 노선을 차지하느냐에 따라 운수업체의 수익이 갈렸다. 큰 이권이 걸려 있는 만큼 업체와 공무원 간 유착이 없도록 1년마다 인사를 했다. 하지만 노선을 정하는 일은 지리와 교통량, 이전 노선의 역사 등을 알아야 하는 상당히 어려운 업무였다. 해마다 바뀌는 직원이 전담하기 어려우니 노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광주고속의 고참 직원이 나와 도움을 주는 게 관행이 됐단다. 당연히 수익이 많이 나는 황금노선은 광주고속에 몰렸다. 바로 직원들에게 야단을 쳤다.

 “이게 말이 되는 얘깁니까. 당장 내쫓으세요.”

 그 일이 있고 2주쯤 지난 어느 날 밤 9시쯤 광주고속 대표가 지사실에 찾아왔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창업주인 박인천 금호그룹 회장이었다.

 “아, 이게 제가 지나가다 보니까 밤늦게까지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이 많은 것 같아서. 직원들 불고기라도 사주십시오.”

 그러면서 두툼한 봉투를 건넸다. 직원들 불고기 값이라는데 거절할 수가 있나. 받았다. “감사합니다. 그 뜻을 제가 정확히 전달하겠습니다.”

박인천 (1901~84)

 다음 날 오전 간부회의 자리. “어젯밤 금호그룹의 박인천 회장이 지사실에 와서 야근하고 고생하는 도청 직원들을 위해 금일봉을 전달하고 가셨습니다. 이걸 어떻게 썼으면 좋겠습니까.”

 잠시 정적이 흘렀다. 간부들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때 황인동 감사계장이 손을 들었다.

 “도청에 직장 새마을기금이 있습니다. 거기에 주십시오.”

 “그래요. 일리 있네요. 그러면 주신 분의 뜻대로 썼으면 합니다. 답장도 보내 드리십시오. 고맙다고 말입니다.”

 황인동 계장은 한 발 더 나아가 감사 편지에 영수증까지 첨부해 금호그룹 회장실로 보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지방장관회의가 있어 서울에 올라오게 됐다. 서울에서 첫째 날 각 부처를 다니고 숙소로 돌아왔는데 전화가 왔다. 박인천 회장이었다.

 “제가 서울에서 점심을 모시겠습니다.”

 박 회장은 광주상공회의소 회장으로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을 겸하고 있었다. 그는 한 달의 절반 정도는 서울에서 지내는 듯했다. 잊고 있었던 ‘불고기 금일봉’ 건이 떠올랐다.

 “아, 예. 제가 시간 봐서 연락을 드리죠.”

 “아니요. 지금 정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아니, 일정 때문에….”

 “아니, 제가 지사님 일정을 보니 모레쯤 점심이 비어 있습니다.”

 나도 외우지 못한 내 일정을 박 회장이 꿰고 있었다. 관광운수과에 있던 직원은 쫓아냈지만 도청에서 자리 없이 암암리에 활약하는 광주고속 직원이 더 있었나 보다. 당황스럽지만 부인할 수도 없었다.

 “아아, 네…. 그런 것 같네요.”

 “외교구락부에서 점심을 모시겠습니다.”

 서울 중구 남산 중턱엔 양식당인 외교구락부가 있었다. 정치·외교·경제 분야의 굵직굵직한 일이 많이 이뤄지는 곳이었다. 약속한 날 점심, 외교구락부 별실에 박 회장과 나 단 둘이 마주 앉았다.

정리=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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