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시론

미군 병사와 화상소녀의 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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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완근
서울지방보훈청장

최근 국가보훈처는 ‘화상 소녀 찾기’에 나섰다. 6·25 전쟁에 통신병으로 참전했던 리처드 캐드월러더(82)를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그가 수원 미 공군기지에서 근무하던 1953년 겨울, 한 소녀가 부대를 찾아와 치료를 요청했다. 소녀는 불을 피우다가 발생한 사고로 전신에 심각한 화상을 입어 목숨마저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이를 본 캐드월러더는 응급 치료를 받게 했다. 이어 헬기를 이용해 화상 치료 병동이 있던 부산으로 소녀를 이송하였다. 소중한 인연을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잊지 못하고 있다는 그의 사연에 국가보훈처가 나서기로 한 것이다.

 국민들의 도움으로 마침내 사연의 주인공 김연순(72)씨를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얼마 전인 4월 1일, 이제는 할머니가 되어버린 화상 소녀는 역시 노인이 된 미군 통신병과 재회하여 60년 전 못다 한 감사와 그리움의 마음을 전했다. 캐드월러더와 김연순씨의 사연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인류애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가슴 뭉클한 스토리다. 전쟁 당시 이름조차 생소했던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생명을 지키기 위해 참전한 유엔 용사의 헌신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준 사연이기도 하다.

 올해는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0년이 되는 해이다. 정전협정(停戰協定)은 말 그대로 ‘전쟁을 잠시 그치자’는 약속으로, 이는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하자’는 의미의 평화협정이 아니다. 정전협정 이후 60년 동안 한반도는 언제든지 전쟁이 발발할 수 있는 준(準) 전시 상태를 지속해 온 것이다. 그런데도 많은 국민은 나라를 위한 셀 수 없는 희생이 있었음을 망각하고 자유와 평화가 거저 주어진 것으로 생각했다.

 안보, 곧 안전보장(安全保障)이란 외부의 위협이나 침략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다. 대내적으로는 한반도 전체를 공산화하려는 북한에 대항하여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광의로 본다면 자기 국가, 자기 국민의 이익만을 따지는 냉정하고 무한 경쟁적인 국제 정세 속에서 국민의 평안을 지키고 더 강한 국가로의 발전을 도모한다는 의미다. 흔히 안보라 하면 평화와 대립되는 개념이고 둘은 함께 존재할 수 없는 가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진정한 안보를 확실하게 지켜나가면 결국 마지막에는 평화로 귀결되는 것이 아닐까.

 정전협정 60주년을 계기로 우리는 세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우선 공산주의에 맞서 우리나라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했던 국가유공자의 희생정신과 호국정신을 잊지 않아야 한다. 또 우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손을 내밀어준 우방국과 유엔 참전용사의 희생을 기억하고 감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세계 최후의 분단국인 우리의 안보 현실을 잊지 않고 강하고 평화로운 나라, 끝없는 번영을 이룩하기 위한 노력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미군 통신병과 화상 소녀의 상봉은 이런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

 국가보훈처에서는 올해 7월 27일 정전협정 60주년 기념식을 정부기념행사로 추진하려 한다. 국가를 지키기 위해 헌신했던 제대 군인의 일자리 5만여 개를 확보하고, 자라나는 새싹들의 올바른 국가관을 위한 나라 사랑 교육을 확대할 계획이다. 최근 북한의 위협이 계속되고 있다. 60년 전 맺어진 협정이 종전(終戰)도, 평화도 아닌 일시적인 정전이었음을 일깨워준다. 정전협정 60주년을 맞는 이 시점에서 그 의미와 우방의 소중함을, 나라를 위한 희생정신을 다시 한번 깊이 되새겨보자. 과거의 역사를 현재에 기억하고, 미래에 가르침을 전할 때 비로소 대한민국은 더 튼튼해지고 행복해질 것이다.

최완근 서울지방보훈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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