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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 화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자카르타」에서 17년간 살아온 교포 김만수씨의 자동차 앞 유리에는 조그마한 태극기가 붙어있다.
9·30 사태 이후 중국인에 대한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감정이 행동으로 폭발하게되자 중국인과 모습이 비슷한 한국인, 일본인까지 신변의 위험을 느끼게되어 태극기를 호신용으로 자동차에 붙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일본인 기자들도 모두 일본 국기를 붙이고있었다.
반 중공「데모」가 절정에 달했던 지난 3월과 4월 「인도네시아」의 중국인들은 공포에 싸인 나날을 보냈다는 것이다. 길거리에서 폭행을 당한 중국인의 수는 헤아릴 수 없었고 심지어 밤이 되면 돈과 재산을 약탈당하기가 일쑤여서 그 희생자가 수 천 수 만에 이를 것이라는 것이 「자카르타」에 상주하는 외국 특파원들의 이야기였다.
「인도네시아」의 관리나 일반인들은 한결같이 중국인을 향한 소동이 반 중국인「데모」가 아니고 반 중공「데모」라고 강조한다. 그들은 또 소련을 비롯한 다른 공산국가에 대해서도 「인도네시아」가 대외적으로 반공을 취하지 않으며 비동맹임을 엄격히 구분하고 다만 「반 중공」일 따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와 같은 「반 중공」은 말할 것도 없이 9·30 공산「쿠데타」를 조종한 것이 중공이기 때문이다.
9·30 사건이 일어난 전날 밤 북평 주재 「인도네시아」대사는 중공외상 진의로부터 「자카르타」에 변란이 있을 것이라는 예고를 받았다는 이야기는 「자카르타」사람들의 상식이 된지 이미 오래다.
이러한 중공의 전복음모에 대한 반격이 바로 「반중공」 「데모」의 핵심이라고 「인도네시아」사람들은 이야기한다.
「인도네시아」 화교의 역사는 17세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래서 이 나라에 흩어져 살고있는 화교는 3세, 4세가 많고 5세까지 있어 중국말을 모르는 자가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믿을만한 통계가 없어 아무도 정확한 수를 모르고 있지만 대략 3백만으로 추정되고있는 「인도네시아」 화교의 3분의 2가 중공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3백만의 화교가 1억 인구를 가진 이 나라 자본의 70%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화교들이 움직이고있는 가동자금은 40억 달러를 넘었고 그들이 과거에 중공으로 송금한 돈은 매년 1천만 달러에 달했다고 한다.
그래서 「인도네시아」 경제계에는 하나의 속담이 있다.
『돈과 기술은 중국인의 것이고, 「인도네시아」사람은 중국인의 상호와 가방이나 나른다』는 것이다.
여기서 엿보이는 「인도네시아」인의 열등의식이 9·30 사건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다. 지난 4월 말 공포에 질린 화교들이 상거래를 거부하자 「수하르토」 정부는 경제계가 마비될 것을 우려하고 그들에게 신변보호를 약속해야 했다. 그 후 「수하르토」 장군은 「중국인 문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화교의 처우를 연구케 하고 있다. 자카르타=임상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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