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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의 두통거리 화교|「버마」·중공 단교설의 배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모택동 배지 사건>
지난 6월 26일 「버마」의 수도 「랭군」에서 반 중공 「데모」가 일어나 중공 외교관들을 포함하여 수명의 사상자를 내었다.
불과 2,3일 동안에 지방도시까지 퍼져나간 이 폭동으로 「버마」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사태수습에 나섰다.
이 폭동의 원인은 화교들이 「버마」정부의 지시를 무시하고 모택동 「배지」를 달고 다닌 데 「랭군」시민들이 반발했기 때문이라 한다.
폭동을 일으킨 이 조그마한 하나의 계기를 이루어놓은 이면에는 실로 오늘날 동남아 제국에 흩어져 있는 화교에 관련된 정치·경제·사회문제가 복잡하게 부침하고 있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갈등>
더구나 지금까지 동남아의 1천6백여만 화교 대다수의 정신적 구심력이 되어온 중공의 내부적 격동, 국제적 위신추락과 직결되어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버마」는 1949년 모택동이 중국대륙을 통일하자 제일먼저 중공정권을 승인하고 또 「유엔」가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오고 있다.
그리고 「버마」정부는 중공과 1천2백킬로미터의 국경을 접하고 있어 우호협정까지 맺고 있는 상태에 있으면서 중국인들의 모택동 「배지」착용을 금지시켰다는 것은 두 나라 사이에 심상치 않은 갈등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불리한 화교입장>
제2차 대전 후 동남아 여러 나라가 서구의 식민지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동안 모택동의 정치적 영향력은 이들 나라에 있는 화교들에게 커다란 힘이 되었다. 그러나 그 후 동남아 여러 나라가 중공의 위협을 자각하게 되고 「내셔널리즘」의 파도가 높아지자 중공의 존재는 화교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게 되었다.
특히 「필리핀」 「말레이지아」 「인도네시아」 등에서는 서구세력을 몰아낸 여세를 몰아 화교들에게까지 차별대우를 하게 되었다.
화교들에 대한 차별대우는 각 나라에서 평균 이상의 경제력을 가진 화교에 대한 수준 낮은 현지민의 시기심까지 곁들여 잔학 행위로 나타나는 수도 있다. 그 좋은 실례가 현재의 「인도네시아」와 이번의 「버마」 폭동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수하르토」 정권이 반 중공정책을 내세우자 화교들에 대한 약탈사건이 빈발하고 있다. 이래서 지난 4월말께는 화교들이 상거래를 「보이코트」한 사태까지 발생했다.

<인니선 약탈사태>
「버마」에서도 노한 「데모」 군중이 화교들의 상점을 쳐부수고 자동차를 뒤엎었으며, 중공대사관의 담을 넘어가 외교관을 구타하여 죽게 한 것은 평소의 반 화교 감정의 일단이 폭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외 「말레이지아」에서는 1950년대에 공산 「게릴라」를 토벌하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인구의 35%를 차지하는 화교들의 중공국적을 불인정하게 되었다. 그래서 현재 「말레이지아」의 화교는 극소수의 자유중국계를 제외하고는 모두 「말레이지아」 국민이다. 그리고 태국에서도 수 년 전 화교들에게 태 국적을 권장하고 화교학교를 폐지했던 일이 있다.

<싱가포르는 예외>
그런데 화교가 75%를 구성하고 있는 「싱가포르」는 예외로 치더라도 동남아 여러 나라를 여행해 본 사람이면 화교의 힘과 끈기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방콕」의 극장에서 상영되는 서양영화에 태국 말 자막과 함께 중국 말 자막이 나오는 것을 처음 본 사람은 화교들의 세력을 다시 평가하게 될 것이다.
동남아 어느 나라에서나 본토민에 비교하여 그래도 소수에 속하는 화교가 그 나라의 경제계를 좌우하고 있는 것이 문자 그대로의 실정이다. 이러한 화교들이 중공과 협력하는 날이면 그 나라의 운명은 마지막일 것이다.
그런 사태가 올 것을 두려워하여 이를 막기 위해 동남아의 나라들은 각국대로의 사정에 따라 그에 맞게 반 중공, 반 화교의 길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각도에서 「버마」 사태도 주시할 만하다. <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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