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엔 차별이 없다 … 마오쩌둥도 반한 평등정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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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후베이성 황메이현에 있는 오조사 정문. 중국 선불교의 오조 홍인 대사가 일자무식 혜능을 자신의 뒤를 이을 육조로 인가한 곳이다. 오른쪽 작은 문 위에 혜능의 득법게가 새겨져 있다. 혜능은 이 게송으로 자신의 수행의 경지를 드러내 스승의 마음에 확신을 심어준다.

서쪽(인도)에서 온 달마의 선법(禪法)은 이심전심,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졌다. 불법을 전수받았다는 하나의 신표(信標)로써 스승이 쓰던 가사(승복)와 발우(밥그릇)를 함께 전했을 뿐이다. 전의부법(傳衣付法)이다.

 중국 후베이(湖北)성 황메이(黃梅)현의 오조사(五祖寺)는 그런 전법의 현장이다. 오조 홍인(弘忍·601~675)이 혜능(慧能·惠能·638∼713)을 자신의 뒤를 이을 육조(六祖)로 인가한 곳이다. 이런 사연 때문에 오조사는 홍인 아닌 혜능의 사찰로 느껴질 정도다. 그만큼 구석구석 혜능의 흔적이 선명하다.

 답사 마지막 날인 지난달 27일. 오조사로 가는 길은 멀었다. 전날 오후 늦게 국내선 비행기에 몸을 실었었다. 광둥(廣東)성을 벗어나 장시(江西)성에 도착한 후 짧은 잠을 자고 일어난 뒤끝이었다.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섰다. 유유히 흐르는 장강을 건너자 비로소 후베이성이다. 한동안 광활한 곡창지대가 펼쳐지더니 어느새 비탈진 산길이다. 자동차로 기우뚱거리며 올라가니 중국 사찰 특유의 뾰족한 지붕이 나타난다. 오조사다.

 1300년 전 혜능은 어떤 경로로 오조사에 도달했을까. 혜능의 설법집인 『돈황본 육조단경』에는 혜능의 여정에 대한 자세한 언급이 없다. 흥성사본(本)을 저본 삼아 일본 학자 나카가와 다카(中川孝)가 번역한 『육조단경』에 “20∼30일도 걸리지 않아 곧 황매산에 도착”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구글 지도로 검색해보니 혜능의 출발지인 고향 신싱(新興)현에서 황메이현까지는 1200㎞, 3000리 길이다. 걸어서 240시간, 자동차로 12시간 걸린다고 안내한다. 흥성사본 대로라면 혜능이 하루 40㎞씩 이동했을 경우 꼬박 한 달을 걸었을 것이다. 나무꾼 일로 다져진 ‘젊은 혜능’에게도 벅찬 여정이지 않았을까.

 정작 혜능의 시련은 험한 여정이 아니었다. 나무를 배달하러 갔다가 손님의 『금강경』 낭송을 흘려 듣고 문득 마음이 밝아진 혜능은 인생의 비밀을 깨우쳐 뭇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의 길에 나선다. 성불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홀어머니에게마저 작별을 고한다. 그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스승 홍인은 혜능을 첫 대면한 자리에서 매정하게 다그친다.

 “너는 영남 사람이요, 또한 오랑캐거니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단 말이냐?”

 짐승이나 미개인 수준인 주제에 무슨 성불 타령이냐는 힐난이다. 물론 이는 혜능의 근기(根機·수행할 수 있는 능력)를 떠보기 위한 일종의 시험이었다.

 혜능의 대답이 당당하고 맹랑하다.

 “사람에게는 남북이 있으나 부처의 성품은 남북이 없습니다. 오랑캐의 몸은 스님과 같지 않사오나 부처의 성품에 무슨 차별이 있겠습니까?”

 선종사를 장식하는 유명한 ‘불성무남북(佛性無南北)’ 일화다.

 혜능 연구자들은 그의 ‘출신 성분’에 주목한다. 일자무식에 일개 나무꾼이었던 젊은이가 이렇다 할 수행 경험도 없이 불쑥 깨달아 당대 불교의 최고 자리에 오른다.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예외적인 사례가 던지는 메시지는 뭘까.

 깨달음에는 차별이 존재할 수 없다는 평등사상이다. 사람의 영리함이나 우둔함에 따라 속도에는 차이가 있을 망정 누구나 자신의 본래 마음, 본래 성품을 보기만 하면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전 불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가히 혁명적인 선 사상이다.

 고수끼리는 통하는 것일까. 중국 공산혁명의 아버지 마오쩌둥(毛澤東)은 혜능에게서 ‘혁명’을 읽었다. 불성무남북의 정치적 해석이다. 원로 언론인 이은윤씨가 쓴 『육조 혜능평전』의 한 대목이다.

 “나는 불교 경전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불경이 상층부를 위한 불경과 노동인민을 위한 불경으로 구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나라 때 6조 혜능의 불경인 『법보단경』은 분명히 노동인민적이다.”

 마오쩌둥이 1950년대 티베트 불교 지도자를 만나 한 발언이라고 한다. ‘깨달음의 혁명’이 마오쩌둥의 사상 안에서 ‘계급의 혁명’으로 탈바꿈한 셈이다.

 오조사 정문을 마주했다. 오른쪽 담벼락엔 혜능의 득법게(得法偈·깨달음의 노래), 왼쪽 담벼락엔 그의 경쟁 상대였으나 결코 적수가 되지 못했던 신수(神秀)의 게송(偈頌)이 새겨져 있는 게 눈에 띈다.

 홍인은 짓궂었던 모양이다. 상좌들에게 생사 문제에 관한 깨달음을 담은 게송을 하나씩 만들어 제출하라고 요구한다. 그 결과에 따라 육조의 자리를 넘겨주겠다고 했다.

 수십 년간 수행했으나 신수는 안타깝게도 제대로 과녁을 맞추지 못한다. ‘신시보리수(身是菩提樹)/심여명경대(心如明鏡臺)’ 같은 문장으로 이뤄진 밋밋한 게송을 읊었을 뿐이다. 몸은 깨달음의 나무요, 마음은 밝은 거울이니 부지런히 털고 닦자는 실로 도덕 교과서 같은 내용이다.

 반면 문자를 모르던 혜능이 학인의 도움을 받아 지은 게송은 활발발(活潑潑)한 선승의 기개와 번득이는 선기(禪氣)가 느껴진다.

 ‘보리본무수(菩提本無樹)/명경역비대(明鏡亦非臺)/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하처야진애(何處惹塵埃)’.

 번역을 하면 ‘깨달음은 본래 나무가 없고, 밝은 거울 역시 받침대가 아니다, 본래 텅 비어 아무 것도 없는데, 어디 먼지나 티끌이 있겠느냐’라는 뜻이다.

 여기서 ‘본래무일물’은 선이나 악, 불성이나 번뇌 등 그 어떤 틀로도 그 본질을 규정할 수 없는 ‘여기, 지금’의 마음이다. 이 마음은 우리 세계를 구성하는 수 많은 대립 항목들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양 극단을 자유롭게 오간다. 이런 마음에 티끌이나 먼지는 내려 앉을 수가 없다.

 이런 마음은 누구나 갖고 있다는 게 혜능의 생각이었다. 그런 면에서 혜능의 선 사상은 인간에 대한 무한 신뢰를 보여준다. 산속에 틀어 박히지 않고 세간(世間) 안에서도 누구나, 얼마든지, 깨달을 수 있다는 마음의 혁명이다.

 혜능 성지(聖地) 순례의 종착지는 사조사(四祖寺), 사조 도신(道信· 580 ~ 651)이 주석했던 사찰이다. 같은 황메이현, 오조사로부터 10여 ㎞ 떨어져 있다.

 절 안내를 해주던 주지 밍지(明基·42) 스님에게 물었다.

 “『육조단경』에서 단박에 깨닫는 돈오(頓悟)를 강조하던데 돈오와 점오(漸悟·차츰 깨달음) 가운데 어떤 수행법이 맞나.”

 “점오는 돈오의 기초다. 계단 꼭대기 문턱을 한 걸음에 넘어설 때 여러 계단을 차례로 밟아 가야 하는 것처럼 점오를 거쳐야 돈오에 이를 수 있다.” 이런 답이 돌아왔다. 부질 없는 질문이었다. ‘단경’에도 속도의 차이일 뿐이라고 나와 있지 않나.

 사조사의 선당(禪堂·한국 사찰의 선방)을 둘러보았다. 어두컴컴한 선당 내부, 사진을 찍겠다며 소음을 내자 벽쪽에 웅크리고 있던 그림자가 사람의 형상을 갖췄다. 깊은 잠에서 깨어나기라도 하듯 선승 한 명이 서서히 몸을 추슬렀다. 선정 삼매(三昧)에서 깨어나는 것이었을까. 돈오든 점오든, 아니면 앉아서 하는 좌선이든 돌아다니며 하는 행선(行禪)이든 같은 한 가지 목표를 향해 가는 방편일 터였다. 우리 안에 있는 불성, 그 마음 말이다.

사조사(후베이성)=글·사진 신준봉 기자

◆혜능(638~713)= 달마에서 시작한 중국 선불교의 법통(法統)을 이은 여섯 번째 조사, 육조(六組)다. 선불교의 핵심 진리가 담긴 『육조단경』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참선과 화두를 중시하는 한국 선불교의 법맥도 그에게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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