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등 방한에 비친 일 외교동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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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30일 좌등 일본 수상의 방한은, 그 격식이라든지 어떤 문제가 얼마만큼 협의될 수 있겠느냐는 협상의 폭에라기보다 일본의 전반적인 외교적 자세와의 관련-더 구체적으로는 좌등 방한후의 일본 외교가 어떻게 전개되어 갈 것이냐에 보다 큰 관심이 모아져야 할 것 같다.
한마디로, 좌등 방안후의 일본의 외교적 입장은 흔히 말하는 「고자세」로의 전환을 뚜렷이 해 갈 것으로 예견된다.
좌등 수상이 지난 1964년 11월 집권했을 때, 좌등 내각은 내외로 정치적 쟁점을 애써 피해 왔던 지전내각의 「저자세」를 탈피하여 독자적인 노선을 추구하게 될 것으로 관측되었었다.
○…일본 수상으로서는 첫 번째 방한이 되는 좌등 수상의 한국방문은 7월 1일의 박 대통령 취임식전에의 참석이라는 의례적인 것에 덧붙여 독자적인 공식 방한이라는 또 한가지 측면을 지니고 있다.
좌등 방한은 말하자면 복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데 그 시기로 말미암아 의례적인 측면(취임식전 참석)이 두드러지게 비쳐지고 있다. 박 대통령 앞으로 신임장을 제정하여 식전에 참석할 일본 정부특사는 좌등 수상 자신이 아니라 전 외상인 추명 자민당총무회장으로 되어있는데, 일본 수상의 첫 한국방문이 한국의 대통령 취임식전 참석을 위한 것으로 인상지어져 있는 것은 마치 체면(명분)이라도 깎인 듯이 생각하는 측도 없지 않은 일본의 특이한 대한감정이기도 하다. 일본으로서는 말하자면 명분을 버리고 실리를 찾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일 양교 후의 한·일간에 가로놓인 정치문제로 꼽히는 일본의 대북괴 정책을 비롯하여 한·일 민간경제협력의 쐐기가 되고 있는 이른바 「플러스·알파」에 관한 해석차등 실질적인 문제점에 관하여 일본측이 의례적인 방문임을 내세우는 한, 어떠한 언질을 줄 입장에 놓여 있지 않다고 버틸 수 있게 되어 있다.
얼마 전 일본 국회에서 좌등 수상은 한국을 방문하면 독도귀환 문제도 협의하겠다고 스스로 발언하여 야당에 발목이 잡힌 꼴이 되고 있지만 이것 또한 의례적인 방문이었음을 내세우면 추궁을 회피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반대로 한국 측은 실리를 버리고 명분을 찾았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본 수상의 첫 한국방문이라는 절호의 기회를 어떠한 협상 점과 결부시킬 기회를 잃었기 때문이다.
좌등 수상은 2일 예방을 겸하여 박 대통령과 회담하게 되어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양국간의 공동관심사에 관하여 의견교환이 있었다』는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이고 있다.
○…한국방문과 때를 같이하여 좌등 수상의 「사이공」방문, 자유중국 방문이 일본 국회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방월은 월남문제에 중립적인 일본의 입장을 해친다는 것이고 방중은 대 중공관계에 마찰을 가져올 것이라고 야당은 논책을 펴고 있다.
이것을 거꾸로 풀이하면 좌등 내각은 여태까지 「터부」로 돌려왔던 월남문제, 중국 문제에 관하여 독자적인 판단 아래 외교적 포석을 펴 나가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방문도 좌익세력의 반발을 누르고 한·일 국교정상화를 좌등 수상의 손으로 이룩했음을 대외적으로 「과시」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본 정부 특사가 될 추명씨는 한·일 조약체결 당시의 외상이었고 동행할 목내사랑 참의원 의원은 당시의 참의원 외교위원장이다.
일본 패전 후 시정권을 뺏긴 중승에 관하여도 최근은 「무드」에 감싸인 반환요구에 그치지 않고 미군의 기지사용인정을 전제로 한 시정권 반환 등 현실적인 대미교섭 자세를 펴나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둘레의 환경에 교활히 적응하는 자세로 하여 「안도외교」라는 평을 받아온 외교적 자세에서 탈피하여 스스로 적극적인 작용을 미칠 수 있는 입장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삼목 외상의 이른바 「아시아」태평양권 외교구상도 그와 같은 입장과 관련을 짓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의 「고자세」는 산업·무역구성 면에서 고도의 중화학공업화를 달성하고 올해 7월1일부터는 부분적으로나마 자본자유화를 실시할 수 있을 만큼 그 경제력이 지방을 가다듬게 됐다는 것과 한편으로는 동남아제국에 대한 배상실시와 청구권협정에 의한 한국에 대한 경제협력제공으로 「전후처리」는 끝났다는 「정신적 부채」로부터의 해방감이 그 배경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좌등 방한후의일본의 대외적 자세와 동태에 관하여는 보다 관심 깊은 관찰이 뒤따라야 할 것 같다. 【동경=강범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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