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땅, 마음과 몸 … '짝'의 문명, '쪽'으로 잊혀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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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아시아 시대를 열어가는 상상력과 지혜를 찾는 ‘아시아창의리더십포럼’(Asia Creative Leadership Forum·ACLF) 세 번째 주제는 ‘정체성의 재발견’이다. 전헌 성균관대 유학대학 초빙교수의 ‘유학(儒學): 끊임없이 새로운 정체성’, 조동일 서울대 명예교수(학술원 회원)의 ‘동아시아 한문문명의 재인식’ 강연이 12일 오후 서울 창덕궁 부근 한샘디자인센터 강당에서 열렸다. 동양문화의 뿌리에 대한 탐색이다. 이번 행사는 서울대미술관이 주최하고 중앙일보와 한샘이 후원한다.

경북 안동에 있는 병산서원의 겨울 풍경. 전통의 문화적 바탕을 현대에 되살리는 작업이 바로 지금 요구되는 상상력의 출발점이다. [사진 병산서원]

우리는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무한경쟁의 세계 무대에서 다른 문명권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살아갈 우리의 경쟁력의 원천은 어디에서 구할 것인가.

 전헌 교수와 조동일 교수의 강연은 우리의 정체성을 다시 생각해보는 것으로 수렴됐다. 동아시아 문명의 역사에 내장된 오래된 기억을 회복하면서 잊혀진 잠재력을 새롭게 일궈내는 일이 시대의 과제로 부각됐다. 구체적으로는 한문, 과거 제도, 유학(儒學) 사상이 구현하려고 했던 이상과 현실의 한계를 오늘의 시점에서 다시 점검해보는 일이다.

조동일 교수(左), 전헌 교수(右)

 ◆한자가 아니라 한문이 필요한 시대=한자와 한문은 같은가 다른가. 한자급수능력시험의 등급을 따려는 학생들은 있어도 ‘한문 능력’을 높이려는 이는 드문 게 오늘의 현실이다. 조동일 교수에 따르면 이제 우리 학생들에게 필요한 능력은 한자를 몇 자 더 알고 모르고 하는 게 아니다. 한문으로 구성된 동아시아 문명에 대한 총체적 인식이 요구된다.

 한자가 한문을 구성하는 낱개의 글자라면, 한문은 한자로 이루어진 문장을 가리키면서 궁극적으로는 그런 문장에 내포된 동아시아 문명의 역사와 장점에 대한 인식으로 확장된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를 거치는 동안 동아시아는 자신들의 장점을 억누르고 빨리빨리 서구문명을 흡수해야만 했다. 일례로 과거제가 폐지되고 고시제도가 도입됐다. 과거제는 돌아볼 가치도 없고 고시제는 좋은 것일까. 과거와 현재, 동아시아와 서구의 문명을 상대적으로 객관화해 보려는 것이 이날 강연의 출발이었다.

 과거제와 고시제는 비슷하면서 다르다. 시험을 통해 인재를 선발한다는 점에선 비슷하다. 시험과목이 결정적으로 다르다. 서구의 고시제는 법학을 위주로 한다. 동아시아의 과거제는 인문학이었다. 죄지은 사람의 형량을 재단하는 일이 법학의 영역이라면, 죄가 성립하는지 아닌지 판단하는 일은 인간에 대한 통찰을 요구하는 인문학의 영역이다.

 고시제를 가장 빨리 받아들인 것은 동아시아 문명의 주변부였던 일본이다. 일본에는 과거제가 없었다. 과거제가 발달한 한국과 중국이 일본을 본떠 고시제를 수입해야 했던 게 지난 세기다.

 조 교수는 “오늘날 전인(全人) 교육이 무너지며 발생하는 가치관의 혼돈을 법학이 과연 막아줄 수 있는지, 법은 일탈에 대해 선고를 할 순 있어도 인격을 선도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지를 근원적으로 다시 생각해볼 때”라고 말했다.

 전통은 새로움을 여는 오래된 미래다. 실용적 지식이 일본의 장점이라고 칭송하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간략한 한자에 밀려 거추장스럽게 여겨지던 한문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요청되는 시점이다.

 조 교수는 일본이 만들어낸 ‘한자 문명권’이란 용어를 ‘한문 문명권’으로 대체하는 일부터 시작해보자고 제안했다. 한자가 아니라 한문을 익히는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것이야말로 동아시아가 다시 일어설 밑천이라고 했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동아시아 문명의 정수를 오래 지켜온 한국이 변화의 적임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짝 철학’으로 재조명한 유학(儒學) 사상=짝이냐 쪽이냐. 함께 사는 모습이 짝이라면, 홀로 서 있는 모습은 쪽이다. 전헌 교수가 볼 때 인간은 본래 짝의 존재다. 우리는 짝의 존재로 서로를 인식해 왔지만 그 기억을 잊어버리고 사는 게 오늘의 모습이다.

 전통적으로 하늘과 땅, 마음과 몸이 짝을 이룬 존재가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사회관계도 그렇다. 부자(父子), 군신(君臣), 장유(長幼), 부부(夫婦), 붕우(朋友) 간의 관계로 파악했다. 동아시아 문명의 이런 특징이 전통 유학에 잘 나타나 있다.

 인간의 모습으로서의 짝은 모든 생명의 실상으로 확장된다. 전 교수는 인류 역사는 결국 짝과 쪽의 이야기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온 20세기는 수많은 짝의 이야기를 단지 쪽의 이야기로 바꾸어 냈다는데 문제가 있었다. 좀 더 많은 땅을 차지하려고 다투는 대국들의 이야기가 그렇고, 좌파와 우파로 나뉘어 싸웠던 일도 모두 짝이 아닌 쪽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전 교수는 대학을 졸업한 후 24세에 한국을 떠나 40년 이상을 미국에 주로 거주하며 철학을 가르쳐 왔다. 2004년 귀국한 그에게 한국의 유학적 전통의 기억이 더 생생하게 남아있는 듯하다.

 그는 “우리는 한시도 새로워지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것이 바로 유학에서 말하는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정체성”이라고 했다. 지구상 모든 생명이 함께 아름답고 즐겁게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가기 위한 생각의 자원을 유학에서 끌어올 수 있다고 했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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