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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내가 훔친 여름」을 읽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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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승옥 작 「내가 훔친 여름」에 투고된 독후감은 모두 2백 3통. 남 1백25, 여 78통. 이들은 한결같이 연재소설을 새로운 체제로 편집한 것엔 박수를 보냈다. 신문의 「매너리즘」은 그만큼 독자를 식상(식상)하게 하는가보다. 20대의 투고자가 많은 것은 어떤 계층적인 독자군(군)을 시사한다. 작자의 변과 함께 몇 편의 독후감을 골라 여기 소개한다.

<「일상」다룬 소재 「어필」뚜렷한 주제 없는 건 약점>
우선 내가 이 소설을 읽고 느낀 것은 첫째 <재미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성공한 셈이다. 이 소설이 강력한 문제점을 담지 못하고 있다는 험은 「스토리」가 특이한 내용을 쫓지 않고 지극히 일상적인 것을 다룬 때문이 아닐까싶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점이 오히려 독자에게 「어필」해온 매력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강동순> 일가의 사정도 대체로 무난하게 파헤쳐 놓았으나 <강동순>을 너무 자유 분방한 아가씨로 표현한 것은 좀 소홀한 설정이 아닌가 싶었다.
좀 더 파고든다면, 소설이 재미있다는 것과 문장이 개성적이라는 점만으로 성공한 작품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 볼 때 이 소설이 다루고 있는 주제가 주목할만한 것은 못된다. 따라서 그러한 결점은 이 작품을 높이평가 하기에 결정적 실패로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나에게 끈질기게 다음 회를 기다리게 했고, <영일><나> 이런 인물은 마치 주위에 히죽이 웃으며 나타날 것만 같은 흥분을 주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나는, 이렇게 개성적이고 「유머러스」하면서도 정확한 문장을 쓸 수 있는 작자가 좀 더 주제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면, 한국문학의 새로운 성공을 가져오리라 싶어진다. 임석장<대구시 중구 종로 1가 56대동기료사내>

<현실에 밀착한 조사용어 인물설정이 너무 정석적>
작가는 자신의 학창생활의 주변을 멋있게 승화시켜 소설화한 것 같다. 젊은 지식인의 이중성, 취약성, 무기력, 비겁성, 사기성, 현실 타협성 이라는 약점들을 작품 속에서 장영일, 남형진, 강동우, 그리고 나 등으로 각각 분장시켜 도려냈다.
소설가로서의 작가는 「내가 훔친 여름」에서 다음과 같은 자기의「글쓰는 기술」을 보여줬다. 첫째 묘사의 친근성인데 그는 젊은 세계를 그리는데 젊은이의 용어를 썼고, 작품은 용어와 현실 어를 밀착시킨 것이다. 따라서 「내가 훔친 여름」은 우리 문단의 숙제의 하나인 대중과의 거리를 단축시킨 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날마다의 단절로 인한 문학적 가치의 상실을 극복하려했고, 실제에 있어 그것이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다. 또한 가지 만초를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흥미를 지나간 것은 한때 만화로 그려본 작가의 능력이라고 칭찬해 주고 싶다.
그러나 께름쩍은게 전연 없는 것은 아니다.
그의 작품「환상수첩」과 이번의 작품을 비교해볼 때, 작품구성에 있어서 인물설정이 너무나 정석적 이라는 점이었다는 것이다. 아마 이것은 소설의 소재가 무한하지 않고, 또 작가자신의 연소로 많은 생활체험이 없다는 것에서 연유한 것인 것 같기도 한다. 양동춘<남·서울성북구 성북동 337>

<젊음을 생각게 하는 낙서 적절한 「메타포」에 마력>
「내가 훔친 여름」은 지금까지 발표된 금씨의 단편들의 여러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흥미로 왔다. 그 흥미는 퍽 마력적이다.
항상 예리하고 「시니컬」한 그의 「누구를 골려주기 위한」 낙구적인 문장과 적절한 「메타포」의 사용으로 작품에 탄력성을 지니는 그러한 아름다움이 이 소세에 마력성을 부여하는 이유라 해도 좋을 것이다.
독자들의 담화가 경구와 일화로 풍부하게 될 것을 이 글의 작자는 혹 미리 생각하고 있었던거나 아닐까.
앞에서 흥미라는 말을 했지만 그의 소세엔 흥미이상의 그 무언가가 또 있다. 그의 소설의 거의가 그러했듯이 「내가 훔친 여름」도 얼핏 읽으면 「청춘의 풍속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낙서 같고 장난 같다. 또한 그것은 수면만 보이면서 흘러가는 강물소리에 비유된다.
그러나 귀를 기울여 듣는다면 강물소리는 보다 많고 중한 의미를 준다. 가령, 이 소설에서 장편이나 희곡 어느 편에도 합당치 않은 사건과 「이벤트」를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다만 젊음의 문제다.

<나> 이창수나 강영일에게 집중돼오는 모든 것에의 젊은 태도. 그 몇 개의 젊음을 형상으로 만든 위에 이 소설은 시원스럽게 앉아있다. 그러면서 독자로 하여금 주인공처럼 더욱 생각하길 강요한다.
많은 소설가들이 젊은이들의 생태를 그려왔지만 그만큼 독특하게 (그에게 있어선 새롭다는 말에 더하여 신선하기까지 하다) 그린작가도 드문 듯하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선풍기 앞에서 혹은 빙그레 웃고 혹은 사고하는』 내가 되었다면 이 작품에 너무 가치를 부여하는 말이 될까-. 아무튼, 이 입담 좋으나 언어를 지극히 사랑하는 젊은이의 소세이 사의 「소설을 읽는 기쁨과 보람」에의 기대에 저버림 없었다는 점을 기뻐한다. 김일령 <남·대학생·전남광주시 방립동 1반 459 전형섭 방>

<새 세대와 호흡 맞는 상황 잊었던 생명감 다시 찾아>
훔치고 싶은 여름. 우리에겐 그렇게 절실한 여름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불안 속에 할머니를 팽개쳐 두고 헐레벌떡 무임승차를 한다. 요행도 무엇도 아니게 아슬아슬하게 풀려 나와 드디어 마주선 바다! 그 감격도 잠시고 이윽고 비가 내리는 것이다.
시계를 잡히고 가짜대학생의 이름을 팔아 주린 배를 구걸하고 이상한 모임에서 열을 토하고 박수를 치다가 그렇고 그런 남의 정사에 말려들어 그럭저럭 조연을 착실히 끝마치고 이제 막 겨우 그 왜 호박 같은 나의 아가씨를 만났는데 「여름」은 끝나간다는 것이다.
훔치기까지 해서라도 갖고 싶었던 여름이 고작 이런 것이었던가?
빈틈을 남겨놓지 않은 구성에 마성이 깃들인 듯한 현란한 문체에 변변히 숨도 못 쉬고 끌려만 온 것이다. 버려 둔 후줄근한 일상들이 새로운 생명감으로 재현되는 눈부심 속에서 한 회 한 회가 한 폭의 짙은 수채화 같았다.
이 땅을 사는 오늘의 젊은 세대의 상황과 호흡도 알뜰히 발가냈다. 김천<남·27·상·서울 동대문시장광장 1615호 내>

<타성의 옷 벗기는 탈의 범 고독과 부끄러움 느끼게>
읽게 만든 작품이었다. 하루하루 치가 그대로 짭짜름하고 고소한 단편소설 같았다. 그런데 그는 가끔 우리를 울게 했다. 물론 「이미자」처럼 「가슴아프게」 청승을 피운 게 절대로 아닌데도 말이다.
그의 작품에 동참한 「탈의 범」 둘이 아주 지능적으로 우리 옷을 한가지 씩 한가지 씩 벗겨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끝내 마음 밑바닥에 감춰놓고 내보이지 않는 그의 인간에의 정은 부끄러운 우리를 더욱 부끄럽게 해 주었고 울게 했다.
우리는 믿는다.
탈의 범들은 우리에게 옷을 돌려줄 거라고. 아니 그들 자신의 옷마저 벗어들고 우리를 찾아 나설지 모른다고. 그러나 우린 이미 나체가 좀은 덜 부끄러워진 짐승이 되어 그 옷들은 모두 빌어 입었고 훔쳐 입었고 기워 입었노라고, 때문에 필요 없노라고 악을 쓰게 할게라고.
그는 여름을 훔친 게 아니라 우리의 옷을 훔쳐갔다. 그리고 옷을 빼앗기고도 노엽게 하지 않고 더구나 이광수처럼 쑥스럽게도 안 하는 기술을 가진 아주 재주 많은 탈의범 이어서 좋았다. 이난호<여·28·충남 당진군 송산면 상거리 이종화씨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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