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권력분산 새 시스템 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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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개인이든 국가든 그 운명이 한 사람의 손에 의해 결정된다면 인간존엄과 주권은 여지없이 부정된다. 근대 시민혁명은 이런 체제를 인류의 적이라고 타도했고, 오늘날 우리는 독재나 전체주의 정부, 권위주의 통치를 민주법치주의의 적으로 규정해놓고 있다.

당연하고 명백한 이런 이치가 한국에서는 지금까지도 제대로 실행되지 않기 때문에 재확인해본다. 건국 이래 한국 대통령은 왕처럼 군림하며 마음대로 권력을 휘둘렀다.

그 결과가 자신과 국가에 망조를 가져왔음은 매번 확인됐다. 그래서 권위주의 청산과 제왕적 대통령의 타파는 이 순간에도 국가발전의 최우선 과제다. 새 정부는 어떤 경우에도 이를 미뤄서는 안된다.

*** 합리성·격조 높일 국정운영

대통령제는 대통령이 여간 훌륭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지 않는 한 구조상 독재자로 화할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대통령제를 채택하는 나라는 많지 않고, 대통령제를 발명하고 가장 성공하고 있다는 미국에서조차 근래에는 대통령제가 아닌 형태로 바꾸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권위주의 통치와 제왕적 대통령의 청산이 시급한 우리의 경우 개헌을 하지 않으면서도 대통령과 총리의 역할을 재설정하거나 국회 다수세력에게 총리추천권을 주어 국정을 운영하는 방식은 국정운영의 합리성과 격조를 높일 수 있어 국정개혁의 차원에서 실행해볼 좋은 방안이다. 여야 정치세력이나 국회 등 누구나 이에는 적극 협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집중된 국가권력의 분산은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지자체 상호 간, 중앙정부 내의 입법부.행정부.법원.헌법재판소 4부 간, 행정부 내 부처 간, 대통령과 행정부 간에 체계적으로 이뤄질 때 비로소 실현된다.

대통령 1인으로의 권력집중의 모순을 해결해야 할 우리에게 대통령과 총리 간의 역할을 재설정하더라도 국회와 대통령 간에 견제와 균형이 제대로 유지되는 관계를 새로 설정하고, 지역등권을 실천에 옮겨 국정운영을 새롭게 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은 임기 5년의 시간적 한계, 우리 국가가 당면한 국내외적 난관, 국제정치적 여건, 활용할 우리의 인적 자원과 지적 자원의 한계, 국회와의 관계, 자신이 안고 있는 개인적 한계 등 '근본적인 한계'를 안은 채 국가적으로 가장 중요한 일들을 해결해야 하므로 국정의 모든 것에 다 관여하고 손대면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누구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대통령제 정부의 성공에서는 누가 대통령이 되는가도 중요하지만 대통령제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하는 방법이 매우 중요하다.

대통령과 총리 간에 역할을 새롭게 설정하는 새 시스템에서 대통령은 국가원수와 국정조정자로서 국방.외교.안보.통일업무와 가장 중요한 국가과제를 두세 개 정해 대통령 어젠다(President's agenda)로 삼고 이를 추진한다.

청와대 수석실은 탁월한 능력가들로 충원돼 대통령 어젠다를 기획하고 실천해가는 중추여야 하고, 내각에는 권력적 간섭을 삼가야 한다.

우리 사회의 한정된 지적 자원과 인적 자원이 체계적 네트워크를 통해 청와대를 중심으로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되는가에 따라 대통령 어젠다의 성패가 결정된다.

*** 대통령·장관 수시로 만나길

총리는 내치행정의 나머지 부분을 맡는다. 국정을 잘 알고 국정수행의 능력이 뛰어나며 미래를 향해 개척적 비전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원래는 대통령의 권한인 것을 위임방식으로 실제에서 대통령과 총리가 역할을 분담하는 것인 만큼 대통령과 호흡이 맞아야 한다. 대통령을 가르치기보다 대통령이 자연스레 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하도록 보좌하면서 동시에 내각을 통할하는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이런 총리 중심의 내각이 능률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각 부 장관을 능력 본위로 배치해야 한다. 능력있는 내각을 총리가 총괄하고 동시에 대국회 활동도 효과적으로 벌여 국회의 협력을 최대한으로 이끌어내야 한다.

대통령과 장관들도 회의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필요할 때 수시로 만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새 정부는 초기 6개월 내에 중요한 개혁과제를 발진시켜야 하므로 개혁에 관한 대통령과 내각의 팀워크가 매우 중요하다. 새로운 시도를 성공시킬 정밀한 청사진이 필요한 때다.

鄭宗燮(서울대 교수·헌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