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노동당 비판한 블레어 "반대만 하는 정당 되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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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노동당 중흥을 이끌었던 토니 블레어(60·사진) 전 총리가 자신의 정치적 뿌리인 노동당을 비판하고 나섰다. 노동당이 ‘중도’라는 정체성을 잃고 자꾸만 1980년대의 좌우 이념 대립에 휩쓸리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블레어 전 총리는 11일(현지시간) 출판된 영국의 정치 주간지 ‘뉴스테이츠먼(Newstatesman) 100주년 기념판’에 실은 기고문에서 “에드 밀리밴드 영국 노동당 당수는 ‘안전지역’으로 돌아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구체적 대안 없이 정부의 예산 삭감에 반대만 하는 노동당의 행태를 꼬집은 것이다.

 최근 영국 집권당인 보수당은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 앞으로 3년간 퇴직 및 가족연금의 증액을 1%로 동결시키는 복지예산 삭감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야당인 노동당이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와 조지 오스본 재무장관이 자신들의 경제정책 실패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돌리고 있다”고 비난 성명을 발표하자 블레어 전 총리가 노동당을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블레어 총리는 “반대만 해서는 ‘반대를 위한 정당’이 될 우려가 있다”며 “밀리밴드 대표와 당원들은 미래의 비전을 보여주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그는 또 “금융위기 이후에도 영국의 정치 기반은 좌파 쪽으로 흐르지 않았다”며 “정치인들은 ‘익숙한’ 좌우 이념 대립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야당은 감정적으로 휩쓸려선 안 된다”며 “대중의 분노를 대신 담아두지 말고 대안을 찾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디언 등 현지 언론은 “블레어 전 총리가 좌파가 주도하는 ‘새로운 자본주의’를 주창하는 밀리밴드 노동당 대표에게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블레어 전 총리는 노동당이 이 질문들에 답을 할 수 있을 때만 집권당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주택수당이 늘어나는 요인이 무엇인지 ▶어떻게 노동자들의 기술력을 향상시켜 실업률을 줄일 것인지 ▶보건·교육 분야의 개혁을 어떻게 이끌어 낼 것인지 등 일곱 가지 질문을 예시로 들기도 했다.

 노동당 대변인은 “노동당은 구태의연하게 일을 하는 (보수당) 방식에 도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블레어 전 총리는 언제나 핵심을 짚어주기 때문에 그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은 언제나 중요하다”며 “이번 기고문에서도 우리 노동당의 주요 목표인 일자리와 성장에 대해 언급했다”고 말을 아꼈다.

 이런 블레어 전 총리의 발언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그가 2007년 퇴임 이후 국내 정치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다. 그는 마거릿 대처 집권 이후 18년간 야당 신세를 면치 못했던 노동당을 1997년 집권당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 일등공신이다.

채승기 기자

◆토니 블레어(60)=1994년 41세로 영국의 최연소 노동당 당수가 됐다. 집권하려면 개혁과 변화가 필요하다며 1918년부터 노동당 정책의 대명사였던 국유화 강령을 폐기하는 등 ‘신노동당 정책’을 밀어붙였다. 1997년 5월 총선에서 집권 보수당에 압승함으로써 20세기 최연소 총리가 됐다. 집권 이후 사회 정의와 시장경제를 결합시킨 ‘제3의 길’을 표방해 인기를 끌었다. 2001년, 2005년 총선에서도 승리해 총리로서 3기 연속 집권했다. 2007년 6월 재임 10년 만에 총리에서 퇴임했다. 퇴임 이후 유엔의 중동 특사를 지내는 등 국제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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