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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설풍경] 김경미 시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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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미장원을 하던 우리 집의 설날은 거꾸로였다. 새벽까지도 한복을 차려입고 와서는 머리에 산봉우리처럼 높게 '후까시'를 넣어달라는 부인네들로 발디딜 틈이 없던 집은 설날 아침이면 지상에서 가장 고즈넉한 장소가 되곤 했다.

그 고즈넉함이 좋아서 나는 집을 지킨다는 핑계로-그 시절엔 누군가 한 사람은 항상 집을 지켜야했다-안동의 큰집 가는 일에서 항상 빠지곤 했다.

그리곤 혼자 책을 든 채 텅 빈 미장원으로 들어오는 설날 햇빛을 즐기면서 노란 치자물감이 진하게 들여진 오징어전을 특히 자주 가져다 먹곤 했다.

그러다 결혼하고부터 비로소 크고 작은 신발들이 현관 바깥까지 넘치는 설을 직접 겪게 됐다. 그리고 그런 명절을 더 좋아하게 됐다. 현관문이 닫힐 새 없이 이어 들어오는 가족들.

팔남매에서 두 셋쯤이 빠져도 항상 앉을 공간이 모자랄 만큼 북적대기 시작하는 방들. 부엌에서 나는 온갖 명절음식 냄새들. 추도예배상이 아닌 반질반질한 제기에 격식에 맞게 차려지는 차례상.

제기에 올리다가 떨어뜨린 대추 같은 건 다시 올리는 게 아니라는 손위동서들의 가르침. 그리고 아흔을 앞둔 시어머니가 손자들에게 건네는 빳빳한 천원 단위의 세뱃돈 같은 게 있는 명절이 훨씬 설레고 즐거웠다.

그 중에서도 특히 즐겁고 재밌는 건 차례상을 물리고 나누는 추억담들이다. 그 때쯤이면 누군가가 항상 지난 번 명절때 했던 얘길 또다시 꺼낸다.

어느 해인가 부모님이 함께 설 제수음식을 마련하러 30리 떨어진 장에 나갔다가 폭설을 만나 밤 늦도록 캄캄한 눈속을 걸어서 돌아오셨다는 얘기를.

그러면 그때는 전기도 없던 땐데 하도 걱정돼서 등잔불 켜들고 나섰다가 나서자마자 눈보라에 불이 꺼져버려 돌아왔다는 얘기며, 그때 돌아오는 밤 눈길 속에서 벗겨져나간 고무신이 설 다 지나고 날 다 풀린 후에 마을의 정반대쪽 웅덩이에서 나왔다는 얘기들이 보태진다.

그런 추억담들이야말로 평범한 삶을 특별케 해주는 더없는 전설이고 팬터지다. 거기에 이어지는 형제들 간의 어린시절이며 고향마을의 정경과 그 마을 사람들의 그 때 그 시절.그 후의 인생여정 얘기들 또한 고스란히 수십편의 풍경화이고 드라마이고 교훈이기도 하다.

그러니 명절은 하루에 인간의 역사와 인생을 총체적으로 듣고 겪고 깨우칠 수 있는 농축의 날이기도 하다.

그런 농축의 중심에 있는 것은 물론 뭐니뭐니해도 고향일 것이다. 샴푸를 크림으로 잘못 알아 보름이 넘도록 얼굴에 바르기도 하고, 딸들이 현대식으로 수리해준 집의 좌변기가 낯설어 번번이 이웃집 뒷간으로 달려가는 부모님이나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형제가 아직 지키고 있는 고향.

내 고향이 아니어도 명절날의 시골 마을은 도시쟁이의 경쟁적인 삶의 피곤함과 상처를 어느만큼씩 순화시켜주곤 한다. 그래서 어떤 설에는 시어머니가 계시는 서울의 큰집 대신 남편의 형님네가 아직 살고 있는 정읍을 찾기도 한다.

그때마다 유난히 오래 눈이 가는 데가 있다. 마을의 초등학교에 내걸린 명절 동창회 모임을 알리는 플래카드다. 먼 고향이 있어 명절 귀향 때마다 초등학교 동창들도 저절로 만나고 하면 얼마나 설레고 재밌을까.

올 설 연휴에는 나도 서울에서나마 고향집이랄 수 있는 그 미장원 옛집과 초등학교라도 들러볼 작정이다. 어른이 돼 지금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자기 자신을 가장 신기하고 절실하게 돌아보게 해주는 곳이 명절날의 고향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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