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권석천의 시시각각

중수부를 조문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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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권석천
논설위원

유세차(維歲次) 모년(某年) 모월(某月) 모일(某日)에, 기자(記者) 모씨(某氏)가 중수부(中搜部)에 고(告)하노니, 검찰의 손 가운데 종요로운 것이 너로되, 세상 사람이 귀히 아니 여기는 것은 너의 쓰임에 있었던 바이로다. 아깝고 불쌍하다. 너를 만난 지 우금(于今·지금까지) 삼십이 년이라. 어이 인정이 그렇지 아니하리요. 너의 행장(行狀)과 나의 회포를 총총히 적어 영결(永訣)하노라.

 연전(年前)에 너를 대검찰청에 둔 까닭은 사정(司正)의 표상(表象)으로 삼고자 함이요, 한 나라의 기강을 세우고자 함이라 들었노라. 허나 금일자(今日字·오늘 자) 검찰 인사로 너를 지휘할 중수부장 사라지고, 주인 잃은 집에 명패만 남았으니 이미 망자(亡者)가 된 것이라. 안타깝다 중수부여, 아쉽다 중수부여, 물중(物中)의 명물이요, 철중(鐵中)의 쟁쟁(錚錚)인 네가 수사에 착수하고 탐관오리 추포(追捕)할 제, 그 민첩하고 신기함은 귀신이 돕는 듯하였도다.

 내 각별히 너를 조문하고자 함은 아무도 네 흉사(凶事)를 돌아보지 아니하는 세태의 각박함과 무상함 때문이라. 이철희·장영자 사건부터 노태우 비자금, 한보그룹 정·관계 로비, 불법 대선자금까지 검찰 위상 드높인 건 오로지 너의 공(功)이었고,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대통령 자제들도 금부(禁府)로 나수(拏囚·죄인을 잡아 가둠)하였으니, 그 이름 하나로도 이 세상 거악(巨惡)들이 곱게 잠들지 못하였음이라.

 오호 애재(嗚呼 哀哉)라, 중수부여,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무소불위(無所不爲) 너의 힘이 너를 죽인 것이로다. 그것이 모두 위정자(爲政者)들이 너의 힘 좀 쓰겠다고 비답(批答·임금의 답) 내리기를 주저하지 아니한 탓이요, 너를 거쳐 간 검사들이 자리 욕심에 삼가지 아니한 탓이요, 제 잇속 차리느라 도부수(刀斧手·칼이나 도끼로 무장한 군사)의 무기인 양 너를 휘두른 탓인지라. 무릇 칼은 칼집 안에 있을 제, 그 값어치를 하는 법이거늘, 원칙 없이 쉽게 꺼내 드는 칼, 한번 빼들면 멈추지 아니하고 무에라도 베어야 하는 칼, 죽은 권력 부관참시(剖棺斬屍)하는 칼이 된 이후로 너의 운명 예정된 것 아니리오.

 한바탕 칼춤 뒤엔 억울한 혈점(血點·피가 맺혀 살갗에 생긴 점)들 부지기수요, 원(怨)과 한(恨)이 봄날 벚꽃처럼 구천에 흩날렸으니, 탓할 것은 칼이 아니요, 그 칼 쓰다 각자도생(各自圖生) 떠난 자들 아니던고. 거년(去年·지난해) 십일월에 너의 존망(存亡) 목전에 두고 대검찰청 희미한 등잔 아래 골육 다툼 벌어지고, 그때 실상 너의 명줄 두 동강이 난 것이니, 만져보고 이어본들 속절없고 하릴없다. 네 한 목숨 지키려고 옥쇄(玉碎)까지 불사했던 장수(將帥) 하나 표표히 떠도는 형국일세.

 오호 통재(嗚呼 痛哉)라, 중수부여, 나 이제 너를 보내며 저어함은 네 죽음이 우리에게 어떤 교훈으로 남을 것이며, 미구(未久)에 드러날 특수수사는 또 어떠한 모습일지 묘연한 때문이로다. 정치 풍파에 춤추지 아니하는 수사, 살아있는 권력도 우회하 지 아니하는 수사, 작은 허물에도 감연(敢然)히 청죄(請罪·잘못을 사과함)하고 인권의 요구를 순수(順受·순순히 받음)하는 수사,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환부를 도려내는 수사는 정녕 요원 한 일이더냐. 대저 특수수사의 요체 는 민심을 천명(天命)으로 여겨 공감을 얻는 데 있거늘, 그런 수사는 몽사(夢事)일 뿐이던가. 전도(前途·앞길)의 막막함과 주권자들의 서글픔이 너의 빈자리에 남을진대, 어찌 만백성이 지켜보고 두고 볼 바 아니리요.

 불민한 내가 유씨 부인(兪氏 夫人) 조침문(弔針文)에 의탁하여 너의 갈 길 잡았으니, 네 비록 사람이 아니나 무심치 아니하면, 한국 검찰 특수수사 바로 서는 그날까지 자계(自戒)의 묘비명 되어주길 바라고 바랄 뿐이라. 오호 애재라, 중수부여.

권석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