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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국가지도자가 여성이면 ‘젠더 리스크’가 있다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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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젠더 리스크(gender risk)’. 최근 들었던 말 중 가장 ‘확 깼던’ 단어다. 한 남성 선배가 박근혜 대통령 얘기를 하면서 한 말이다. 대통령이 여성인 게 국가운영의 위험요인일 수 있다는 말, 한마디로 ‘여자라서 어쩔 수 없다’는 말로 들렸다. 남자들끼리 모이면 ‘대통령의 불통과 인사 난맥상 등이 여자라서 그렇다’고 쑥덕거린다고도 했다. 그래서 남자들에게 물어봤다. ‘젠더 리스크’를 느끼는지. 상당수가 “지금이 어느 때인데…”라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무시 못할 일부는 이런 지적을 했다.

 -친박계 의원들이 앞장서 비판할 정도로 조직 장악을 못하고, 명분과 자기 이미지에만 집착하는 모습이 남자들에겐 낯설다.

 -대통령과 참모들이 서로 소통방법을 몰라서 헤매는 것 같다. 청와대 남성 참모들의 연령대로 볼 때 여성 상사와의 소통방법을 모를 가능성이 크다.

 -박 대통령은 ‘남자에겐 이해하기 힘든 여자의 특징’을 보여준다. 듣기보단 자기 말만 하고(불통 이미지),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화부터 내고(3월 4일 대국민담화), 잔소리가 많고(7000자 분량의 지시사항), 사과에 인색한 모습(17초 사과) 등이다.

 -국민들은 요즘 북한 김정은보다도 대통령의 국정운영방식을 더 걱정한다. 이렇게 온 국민이 대통령을 걱정하는 사태는 건국 이래 처음일 거다. 남성 대통령이 이 정도 헤맸다면 국민이 걱정만 했겠나? 박 대통령은 오히려 ‘젠더 프리미엄’을 누리고 있다.

 이로써 무엇을 염려하고 있는지는 알았다. 하지만 이를 젠더 리스크라고 하기엔…. 그러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타계 소식을 들었다. 그는 내 사춘기 때 여성도 총리를 할 수 있다는 걸 깨우쳐준 인물이다. 그리고 많은 저항에도 복지주의에 길든 영국병을 고쳤고, 주변국의 우려에도 포클랜드 전쟁을 감행해 영유권을 지켰다. 물론 영국에선 양극화를 심화시켰다는 등의 비난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어쨌든 남성들이 구하지 못했던 영국 사회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여성 총리 대처였다.

 그런 대처가 ‘레이건의 애인’이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당시 공산주의 몰락의 주역이었던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외교노선을 함께하는 등의 친미정책에 대한 비난이었다. 이렇게 세상은 여성 지도자에게 틈만 나면 여성성을 무기로 공격할 준비가 돼 있다. 대처의 기억을 더듬다 깨달았다. 여성과 남성 지도자는 발상의 방식이 다르고, 목적지는 같아도 가는 길과 방법엔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 여성 지도자는 다른 방식으로 성취할 뿐, 그게 위험요소도 욕먹을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젠더 리스크는 없다. 이젠 박 대통령이 이를 증명해 주길 바란다.

글=양선희 논설위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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