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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달러=100엔 초읽기 … 한국경제 2차 공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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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일본 정부의 ‘무제한 돈 풀기’의 영향으로 엔화 가치가 연일 급락하고 있다. 8일 일본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화 가치는 달러당 98.86엔까지 떨어졌다. 사진은 장중 한때 달러당 98.5엔을 기록하고 있는 모습. [도쿄 AP=뉴시스]

엔저의 2차 공습이 시작됐다. 달러당 100엔 시대가 눈앞에 왔다. 각국의 돈 풀기 경쟁에 ‘새우등 터지는’ 격이 된 한국도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지난 4일 일본은행이 15년간의 디플레이션(물가 및 자산가치 하락)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놓은 ‘양적·질적 완화’ 정책으로 또 한 차례의 엔저에 대한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아베노믹스(아베 총리의 경기부양 정책)’의 최전방에 선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예상을 뛰어넘는 강도의 정책을 내놓았다. 2년간 통화량을 두 배(현재 138조 엔에서 내년 말 270조 엔)로 늘리고, 장기 국채 등 자산 매입 규모도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공격적인 ‘돈 폭탄’ 정책에 시장은 충격을 받았다. 8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엔화가치는 98.86엔(오후 5시 현재)을 기록했다. 달러당 엔화값이 98엔대에 진입한 것은 3년10개월 만이다. 이 추세대로라면 100엔 돌파도 머지않았다는 전망이 많다. 엔화는 지난해 10월 이후 아베 정권의 돈 풀기 영향으로 가치가 가파르게 하락했다. 지난해 9월 말 77.4엔에서 12월 말 86.5엔, 지난 3월 12일에는 96.4엔이 됐다. 김유겸 LIG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달러당 100엔은 시간문제”라며 “7월 말 참의원 선거까지 엔화 약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임노중 아이엠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1월 일본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3%로, 일본은행의 목표치 2%까지 아직 멀어 추가 양적완화 조치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엔 캐리 트레이드(금리가 낮은 일본에서 돈을 빌려 금리 높은 국가에 투자하는 것)’도 엔저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비판도 쏟아진다. ‘투자의 귀재’ 조지 소로스는 지난 5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엔이 해외로 빠져나가기 시작하면 눈사태처럼 멈추기 어려울 수 있다”며 “일본이 위험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국가외환관리국(SAFE)은 3일 보고서에서 “일본 양적완화가 인플레이션이나 자본 유출 같은 거시 위험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먼저 돈을 푼 것은 미국과 유럽이다. ‘헬리콥터 벤’으로 불리는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은 여전히 무제한 양적완화를 주도하고 있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도 무제한 국채 매입을 했다.

 환율 전쟁의 불똥은 엉뚱한 이웃으로 튄다. 한국은 대표적인 피해국이다. 지난해 말부터 올 1분기까지 이어진 1차 엔저 여파로 코스피 지수는 2000에서 1910 선으로 추락했다.

 그래도 1차 때는 그럭저럭 넘겼다. 기획재정부 분석에 따르면 올 1, 2월의 총수출은 전년 대비 0.6% 늘어 엔저에 따른 수출 타격이 가시화되지 않았다. 2차 엔저의 공습은 다를 수 있다.

지난달 전국경제인연합회 설문조사에서 기업들은 “원-엔 환율의 손익분기점은 1185원”이라며 “이미 적자구조”라고 밝혔다. 삼성증권 분석에 따르면 달러당 엔화가 95엔에서 100엔으로 떨어지면 주요 기업 매출은 0.84%, 영업이익은 1.39% 줄어든다. 110엔까지 간다면 매출은 1.81%, 영업이익은 2.77% 감소한다. 업종별 시가총액 50% 이상을 차지하는 주요 상장 대기업 43사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다.

 그나마 엔저 충격이 줄어드는 건 북한 변수 덕이다. 달러 대비 원화가치도 떨어져 엔저를 상쇄하기 때문이다. 원화가 강세로 돌아선다면 엔저의 충격은 고스란히 전달된다. 이날 서울외환시장에서 달러 당 원화가치는 전날보다 8.3원 내린 1140.1원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7월 이후 최저치다. 북한 변수와 엔저가 함께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중요한 변수는 세계 경기회복세다. ‘엔저-원고’ 상황은 1988~90년, 2004~2007년 등 두 차례 있었다. 재정부에 따르면 88~90년에는 수출과 경상수지가 악화되는 등 충격이 컸다. 반면 2004~2007년에는 비교적 선방했는데, 세계경제 활황 덕이었다. 이상재 현대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엔저를 압도할 만큼 미국 경제가 뚜렷이 회복되면 2차 엔저 충격은 올 1분기까지의 엔저 충격보다 약할 수도 있다”고 봤다.

 시선은 오는 11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로 쏠린다. 지난달까지 금통위는 기준금리 동결을 고수해 왔다. 하지만 최근 금리를 내려 경기를 부양하라는 전방위 압력을 받고 있다. 여기에 ‘구로다 쇼크’까지 가세하면서 환율 대응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조건부 금융거래세 도입 등 외환시장의 변동성을 낮추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며, 그래도 원고-엔저가 가파르면 통화정책 완화(기준금리 인하)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수지만 반대 의견도 있다. 권영선 홍콩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원화는 달러나 엔 같은 국제통화가 아니며, 금리를 낮춘다고 원화가치가 하락하지도 않는다”며 “주요국의 돈 풀기를 따라 했다가 부작용이 클 수 있다”고 말했다.

김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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