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배용의 우리 역사 속의 미소

통일의 꿈을 이룬 환희의 미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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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

감은사는 신라 31대 신문왕 2년(682년)에 세워진 사찰이다. 지금은 앞마당에 동서로 쌍탑이 서있고 사찰은 터만 남아 있다. 1959년 서탑을 해체수리 복원할 때 나온 사리기가 옆의 사진이다. 신라통일 이후 최초의 쌍탑이며 동해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우아하면서도 위엄 있게 서서 하늘을 향해 상승하는 모습이다.

 원래 감은사는 30대 문무왕 때 동해에 출몰하는 왜구를 불력으로 물리치기 위해 짓기 시작했는데, 문무왕이 도중에 세상을 떠나자 아들인 신문왕이 이어받아 완공한 사찰이다. 용이 돼 동해를 지킨다는 문무왕의 굳은 의지를 담은 호국의 정신과 부왕의 은혜에 감사하는 효의 의미가 서려 있다.

감은사 서탑 청동사리기.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신문왕 시대는 이제 통일의 목표도 이루고 태평성세와 풍요로움을 구가하던 시절이다. 이 탑에서 나온 청동사리기 난간의 네 귀퉁이에 앉아서 음악을 연주하는 네 여인의 통일의 기쁨과 앞으로의 번영을 기원하는 환희의 미소가 눈에 띈다. 한 여인은 비파를 뜯고, 한 여인은 바라를 치고, 또 한 여인은 대금을 불고, 그리고 또 한 여인은 한 손을 번쩍 들고 장구를 치는데 무척이나 신나는 모습들이다. 그 사이마다 무동들이 다양한 몸짓으로 춤을 추고 있다.

 신문왕이 감은사를 지은 이듬해에 작은 산 하나가 감은사 쪽으로 떠내려 오고 있었는데, 산이 거북의 모양으로 그 위에 서있는 대나무 한 그루가 낮에는 둘이 되고 밤에는 하나가 되었다. 왕이 그 이유를 물으니 용이 대답하기를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대나무도 합쳐졌을 때 소리가 나는 법, 이것은 왕이 소리의 이치로서 천하를 다스리게 될 좋은 징조라 하였다. 이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불면 파란을 없애주고 천하가 태평해질 것이라 하여 이를 만파식적이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교훈은 통일은 목적의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라는 점이다. 바로 소통과 화합의 정신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여인들이 악기를 연주하며 함께 피어 오르는 아름다운 미소에서 다양성을 조화의 지혜로 승화시키는 신라인의 멋을 찾을 수 있다.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