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바수술 이야기]②알버트 스타 교수의 마음을 얻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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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명근 건국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어느 목요일 오후, 알버트 스타 교수를 비롯해 모든 의사들이 참석하는 의국 회의가 열렸다.

모두가 자리에 앉자, 스타 교수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자, 오늘은 닥터 송이 우리 병원에 와서 느낀 점을 30분 동안 들어볼까요?" 예상치 못했던 질문에 나는 당황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30분이란 시간을 준 것을 보면, 형식적인 인사나 하라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학생이나 참관인이 아닌 월급 받는 의사였고, 내가 하는 말이 나에 대한 인상을 결정지을 터였다. 떨렸지만 나는 심호흡을 한 뒤, 내게 가장 익숙한 주제를 골라 말을 시작했다.

그것은 병원의 심장 중환자실 처치법의 문제점과 기초 의학에 근거한 개선 방향에 대한 것이었다. 그 때는 내가 미국에서 일한지 5개월쯤 된 시점이었다. 모든 것이 새로워서 별천지에 온 것만 같았던 첫 3개월과는 달리, 익숙해지면서 미국 병원의 문제점들도 조금씩 눈에 띄기 시작한 때였다.

허술한 점이 많았던 한국의 병원에서 수련을 받던 시절, 나는 언젠가 내게 권한이 생기면 개선하리라는 마음으로 수술 후 처치법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노트에 정리하곤 했다. 그게 습관이 되어 나는 미국에서도 개선할 부분들을 생각하고 정리하고 있었고, 그게 그 때 내가 가장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내 말이 끝나자 사람들은 모두 굳은 표정이었다. 돌이켜보면, 첫 발언으로 그게 알맞은 주제였을까 싶다. 그 병원이 얼마나 좋은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우고 감사함을 느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 적절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스타 교수가 아니었다면, 나는 후진국에서 온 주제에 감히 지적질이나 하는 건방진 녀석으로 영원히 눈 밖에 나서 2년간을 허송세월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어차피 내게 선택권은 없었다. 학교에서는 지식을 쌓기 위해서, 미국에서는 살아남기 위해서, 수술방에서는 생사의 기로에 선 환자들을 살리기 위해서, 나는 매 순간을 전쟁처럼 살아왔다.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법이나 듣기 좋은 이야기는 내 적성과는 거리가 먼 일이었다.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내가 치열하게 공부한 지식들을 논리적으로 설명해내는 것뿐이었다. 그 때 스타 교수가 침묵을 깨고 몇 가지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나는 내가 공부했던 기초의학의 원리에 근거해 최선을 다해 답했다.

굳어졌던 분위기가 풀리면서, 스타 교수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여러분, 이제 내가 왜 송선생을 전임의로 뽑았는지 알 것입니다." 이어서 다른 교수들과 전공의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스타 교수의 미소에 나는 힘을 얻었고, 내가 알고 있는 지식들을 바탕으로 차분하게 대답을 이어갔다. 질문에 대답해 가면서, 최신 의학기술에 있어서는 그들보다 부족한 부분들이 있을지 몰라도 기초 학문에 있어서는 내가 그들보다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회의가 끝나자 스타 교수는 내게 그 다음 주에 병원의 모든 전공의와 인턴들을 대상으로 같은 내용을 다시 한 번 강의할 것을 요청했다. 나는 미국 의사들과의 공개적인 토론에서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에 커다란 자신감을 갖게 됐다. 기초부터 쌓아올려 가면 세계에서도 얼마든지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굳은 믿음을 가지게 됐다.

이후 스타 교수는 어렵고 힘든 수술을 모두 내게 준비시켰다. 그 때 나는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고, 복잡한 수술을 하는 데에 익숙해졌다.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자, 하루라도 빨리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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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심교 기자 simkyo@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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