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엔 꽃, 저녁엔 야구, 밤엔 맛 … 마·창·진 3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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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는 벚꽃의 고장이다. 진해 곳곳의 벚나무를 다 합하면 38만 그루쯤 되니까 사람(인구 약 18만)보다 벚나무가 두 배 가까이 많다. 시내 어디를 가더라도 벚나무를 볼 수 있고, 진해를 에워싼 산에도 소나무보다 벚나무가 더 많다.

진해 벚꽃은 차례를 지키며 피어난다. 벚꽃 명소인 진해역 인근 여좌천변부터 개화를 시작해 경화역을 거쳐 장복산으로 퍼져나간다. 고도와 위치에 따라 개화 시기가 길게는 열흘까지 차이 난다.

지난달 31일 벚꽃 날리는 창원시 진해구 여좌천에 NC 다이노스 응원단이 깜짝 등장했다.

진해 사람은 벚꽃이 피면 ‘해치’를 간다.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생소한 말이지만 진해 사람에게는 익숙한 표현이다. 유난히 벚꽃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벚꽃놀이를 ‘하나미(花見)’라고 부르는 것처럼 진해에선 벚꽃 필 무렵의 소풍이나 잔치를 ‘해치’라고 부른다.

여기엔 유래가 있다. 창원과 진해가 지금처럼 통합되기 전의 얘기다. 인근 창원으로 시집 간 딸과 진해 사는 어머니가 중간 길목에서 만났다. 거기에 야트막한 동산이 있었는데 그 산의 이름이 해치산이었다. 그 산에서 만난 모녀는 오랜만에 이야기 꽃을 피우며 회포를 풀었다고 한다. 지금 진해는 창원에 속해 있다. 경남 창원시 진해구다.

“오래전부터 진해에서는 벚꽃이 피면 다들 모여서 꽃놀이를 갔어요. 어머니는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벚꽃 핀 산에 올라 장구 장단에 맞춰 가락을 뽑으며 춤을 추곤 했지요.” 진해 토박이인 창원시청 이선우(52) 계장의 회고다.

진해는 봄꽃 축제의 대명사 진해군항제가 열리는 고장이다. 지난 1일 개막해 10일 막을 내리는데 올해로 벌써 쉰한 번째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봄꽃 축제 중 가장 오래됐다. 진해 시내 벚꽃은 이미 절정을 지났지만 장복산에 오르면 아직 벚꽃을 구경할 수 있다. 이선우 계장은 “사실 산에서 즐기는 벚꽃놀이가 군항제 초창기 모습”이라고 귀띔했다.

그렇지 않아도 4월만 되면 진해가 궁금한 참이었데, 올봄에는 이 동네에 가야 할 또 다른 이유가 생겼다. 지난 주말 개막한 프로야구다. 프로야구 9번째 구단 NC 다이노스가 올해 1군에 합류했는데, NC의 홈구장이 창원시 마산회원구에 있다. 올 한 해 창원마산구장에서 NC는 모두 64경기를 치른다.

창원의 야구 열기는 전국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 몇몇 열성 야구팬은 “창원이야말로 야구 성지”라고 주장한다. 프로야구 초창기 시절 야구장에 불판과 삼겹살을 몰래 가지고 와 외야 쪽에 숨어서 바비큐 파티(?)를 열었던 ‘아재(‘아저씨’의 경상도 방언)’의 근거지가 창원마산구장이었다. NC가 생기기 이전 마산 아재들은 이웃 도시 부산까지 가서 야구경기를 즐겼다. 이제 그 아재들이 제 고향마을로 돌아와 창원 야구를 위해 목청을 높인다. 창원은 지금 비처럼 흩날리는 벚꽃으로 그윽하고, 야구장에서 뿜어내는 열정으로 뜨겁다. 창원에서의 봄은 벚꽃에서 왔다가 야구장으로 번져간다. 창원이 이맘때 여행지로 제격인 까닭이다.

글=홍지연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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