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트는 잊으시라 … 2번 타자가 강해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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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에 잠긴 잠실구장 잠실구장이 어둠에 잠겼다. 4일 두산과 SK의 경기가 열린 잠실구장에서 오후 7시57분에 외야 조명과 전광판이 0.3초간 꺼졌고, 전구의 예열 문제로 20분 동안 경기가 중단됐다. [잠실=뉴시스]

KIA는 지난겨울 FA(프리에이전트) 김주찬(32)을 4년 총액 50억원을 주고 영입했다. ‘공격형 2번 타자’의 가치가 이렇게 높아졌다. 김주찬의 계약 규모는 FA 역대 최고인 홈런타자 심정수(4년 최대 60억원·2005~2008년) 이후 두 번째다. 1번 타자와 중심타선을 이어주는 역할에 그쳤던 2번 타자가 현대 야구에서는 공격의 핵으로 떠올랐다는 의미다.

 시즌이 시작되자마자 KIA는 투자 효과를 만끽했다. 김주찬은 개막 후 4경기에서 모두 2번 타자로 나서 12타수 6안타(타율 0.500)·7타점·5도루의 놀라운 활약을 펼쳤다. 1번 이용규(28)가 출루한 여섯 차례 기회에서는 5타수 4안타·1볼넷을 기록했다. 전통적인 2번 타자처럼 번트를 대지 않았다. 김주찬은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쳤다. 타점을 올리고도 도루 찬스가 오면 여지없이 2루를 훔쳤다. 이 덕분에 KIA는 지난 4경기에서 35점이나 쏟아냈다. 선동열(50) KIA 감독이 그토록 원했던 ‘공격형 2번 타자’의 효용은 기대 이상이었다.

 김주찬은 지난 3일 대전 한화전에서 왼손목 부상을 입고 5일 수술대에 오른다. 전치 6주의 큰 부상. ‘김주찬 효과’가 컸던 만큼 ‘김주찬 공백’도 클 전망이다.

김주찬

 ◆2번 타자도 ‘플래툰 시스템’=류중일(50) 삼성 감독은 2번 타순에 ‘플래툰 시스템(상대 투수 유형에 따라 타자 기용을 달리하는 것)’을 적용한다. 오른손 투수가 나오면 왼손 타자 정형식, 왼손 투수가 나올 경우 오른손 타자 조동찬 또는 신명철을 2번으로 기용하고 있다. 스프링캠프에서 2번 타자 수업을 받은 정형식은 “번트 훈련도 했지만, 강공으로 진루시키는 방법을 더 많이 고민했다. 감독님과 팀이 원하는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김진욱(53) 두산 감독은 “우리 팀에 1번 타자(이종욱)와 중심타선(김현수·김동주·홍성흔)은 고정이지만 2번 타자는 여러 후보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후보군 중 가장 타격감이 좋은 선수를 2번에 쓰겠다”고 말했다.

 강한 2번 타자 찾기는 2013년 프로야구의 화두다. 개막전부터 3일까지 16경기가 열리는 사이, 9개 구단은 총 12번의 희생번트를 성공했다. 2번 타자의 번트는 단 하나(넥센 정수성)였다.

 ◆2번 타자의 수학적 의미=미국에서는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공격형 2번 타자’의 중요성이 부각됐고, 이에 대한 학문적 연구도 나왔다. 뉴저지기술대 수학과 부루스 부키엇 교수는 2002년 응용수학 연례회의에서 “팀의 최고 강타자가 2번 타순으로 옮기는 것이 득점을 올리는 데 더 효과적”이라고 발표했다.

 부키엇 교수 연구팀은 ‘가장 이상적인 타순’이라는 주제를 정하고 1989년 메이저리그 전 경기를 분석했다. 그 결과 2번 타자의 역할이 가장 큰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팀은 “3·4번 타자보다 2번 타자에게 타격 기회가 더 많이 돌아온다. 1번 타자가 발이 빠를 경우 뛰어난 2번 타자가 적시타를 때려내면 (희생번트나 진루타 등으로) 아웃카운트를 소모하지 않고 득점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하남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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