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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사회참여|독일문단의 기수 「귄터·그라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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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국에서나 독일에서나 한 사람의 작가가 소위 「예술을 위한 예술」을 지상의 목표로 삼고, 작품활동을 계속하느냐, 아니면 특히 문학에 있어서 현실의 정치적·사회적 여러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앙드레·말로」 「생·텍쥐페리」등의 행동문학가와 「카뮈」 「사르트르」같은 「모럴리스트」들의 등장이래 하나의 중대한 논의의 대상으로 대두하였다.
전후의 독일작가들 가운데 특별히 정치문제에 발벗고 나선 작가 중 그 대표적인 인물은 이른바 「단치히·사가」로 불리는 「귄터·그라스」이다 올해 41세인 그는 「히틀러」 치하에서 겪은 스스로의 체험을 주제로 한 3부작 「쇠북」 「고양이와 쥐」 「개(견)의 해」등을 발표, 그의 독특한 문체와 함께 독 문단의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최근 이곳 서「베를린」과 서독, 그리고 「오스트리아」등에서 때로는 관중의 갈채와 때로는 야유를 받으며 상연된 그의 희곡 「노동자들이 반란을 예행 연습하다.」는 1953년 6월17일의 실패로 끝난 동「베를린」 노동자반란을 소재로 삼고 있다. (당시 공산당의 일당 달성량 상승책정이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음)
얘기는 그 당시의 「셰익스피어」의 「코리울라누스」중 「로마」 천민계급 반란 장면을 「리허설」하는 극작가 「브레히트」에게로 귀착한다. 공교롭게도 무대 위에서 반란장면을 연습할 때 바깥에선 동독정권에 반기를 든 노동자들의 반란이 진행중이다.
그러나 작가 「브레히트」는 그쪽 실제의 반란에는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오직 연극의 「리허설」에만 열중, 「엑스트러」로 동원한 임시 노동자들을 독려해가며 「로마」의 반란장면을 재현시키는 것이다.
작가가 그처럼 강렬히 혁명이라는 연극의 주제에 집착하고 있음에도 사실상 현실을 끝내 파악하지 못하고 마는 것은 「아이러니컬」한 사실이다. 무대위의 천민계급은 현실의 동「베를린」 반란노동자와 일치한다. 극작가는 단순히 반란장면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반면, 바깥 노동자들은 그의 정신적 후원과 뚜렷한 태도를 요구한다. 말하자면 극작가 「브레히트」는 자신이 요구한 정치적 현실을 끝내 파악하지 못한 무력한 문인과 「인텔리겐차」의 표본인 것이다.
그가 직접 달려들어 행동해야 할 때 그는 언제나 망설인다. 뒤늦게 그가 행동으로 옮겼을 때는 이미 지도자가 없는 노동자의 반란은 흩어진 뒤였다.
「그라스」의 연극이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는 차치하고라도 그가 이 연극을 통해 관중에게 전하고자 하는 의도는 다름 아닌 『작가에겐 아무런 상아탑이 없다.』는 것이다. 필요할 때면 언제나- 붓을 던지고 싸움마당에 뛰어들라고 그는 호소한다.
1965년 선거때도 그는 자신의 주장을 직접 실천에 옮겨 「빌리·브란트」의 사회민주당을 위해 「팜플릿」을 작성하고 전독 유세행각에 발벗고 나섰다. 선거가 끝나고 기민당과 사민당 연정을 수립한 오늘, 그의 호소는 실망과 체념의 목소리로 변했다. 전 「베를린」시장이며 현 서독외상인 「브란트」씨에게 보낸 세 통의 공개장을 통해 그는 연정수립을 통렬하게 비난했다.
「우울한 연립정부」란 「그라스」의 호소가 어느 만큼 타당성이 있는지의 여부는 오직 세월이 판가름하겠지만, 그의 작가로서의 정치적 활동과 한 걸음 나아가 「작가와 앙가주망」이라는 근본문제는 우리들 모두의 크나큰 관심사로 남아 있을 것이다.

<여기 「그라스」의 최근 시 작품 중 「66」을 소개한다.
「66」은 1966년을, 「방향은 세계로」「텔리비젼과 코너·킥」운운은 66년도 우주연구와 세계축구선수권 대회를 의미한다. <베를린 이선구 통신원>
◇「66」 - 귄터·그라스
이 도마뱀 해에,-
정말, 햇빛 가득한 벽토 장식 위에
많은 사람들이 상실해서 한 숨을 쉬어다...
이 해 중도막에
나를 재촉하던 것이, 자라고,
표지을 주더니, 앞지르고 말았다...
이 해에 식은 죽 먹기로,-
사람을 떨게 하던 해, 고철...
이 우주적인 해에,-
멋없이 발전과 전진만이 계속된다...
이해 한 해만에도,-
큰 기적은 없었으나 방향은 월세계로…
이 「텔리비젼」의 해에,-
무수한 「코너·킥」이 발사되고,
수많은 위협사격이 「골」문을 통과하였다…
66년도에
자갈밭에, 장벽 밑바닥에,
취소할 길 없는 사격명령이,
가슴을 울리는 항의가,
한갓 분노만이 광란하였다…
도마뱀 꼬리 두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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