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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국정목표 잘못 잡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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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일러스트=강일구]
김종수
논설위원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이 지났건만 국민들의 마음은 조마조마하기만 하다.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건 안 했건 간에 새 정부가 나라를 잘 꾸려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대선 때 박 대통령을 반대했던 사람들이나 야당조차도 일부 인사나 정책에 반대한다는 것이지 이제 막 첫발을 뗀 새 정부를 흔들어 주저앉히겠다는 의도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평가는 선거 때 득표율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추락했다. 이것은 박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지지성향과 관계없이 국민 대다수가 새 정부의 국정수행 능력에 의문을 표하고 있다는 뜻이다.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정부가 오히려 국민이 정부를 걱정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잇따른 인사 실패로 정부가 정상적으로 출발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지난 한 달 사이 박근혜 정부가 보인 국정운영의 혼선과 미숙성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가 더 커 보인다.

국정운영의 혼선과 미숙성은 경제정책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인사검증의 난맥상과 정부조직 개편 과정에서의 정치력 부재는 이미 일단락됐으니 제쳐놓자. 그러나 정부 역량의 시금석이 될 정책의 실패는 두고두고 박근혜 정부의 발목을 잡을 것이기에 그 심각성이 더하다.

 박 대통령이 취임과 함께 정부에 시달한 첫 번째 과제는 창조경제 창달과 복지공약의 완전 이행이었다. 눈치 빠른 공무원들은 금세 ‘감’을 잡았다. 부처마다 업무보고에서 ‘창조경제와 공약이행 완수’를 소리 높여 복창했다. 그러다 보니 ‘창조 외교’에 ‘창조 교육’은 물론이고 ‘창조 문화’와 ‘창조 복지’, ‘창조 관광’과 ‘창조 직업’, ‘창조적 노사관계’에 이르기까지 ‘창조경제’를 갖다 붙일 수 있는 온갖 창조적 개념이 창조됐다. 그러나 주무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창조경제의 구호가 구름 위로 난무하는 사이 정작 심각한 경제현안은 엉뚱한 곳에서 터져 나왔다. 경기침체가 예상보다 심각해 경제운용의 방향을 완전히 새로 잡아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당초 3%로 예상했던 경제성장률을 불과 석 달 만에 2.3%로 낮춰야 할 만큼 경제상황이 위급해졌다는 것이다. 성장률의 급격한 둔화는 세수(稅收) 부족과 고용 부진, 투자와 소비 부진으로 이어져 경제를 저성장의 악순환에 빠뜨리는 악재다. 새 정부가 ‘창조경제’ 타령을 하는 동안 창조적으로 바꾸겠다는 나라 경제의 기반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었던 것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면 어떤 정부라도 경기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정책의 우선순위를 전면 재조정하는 게 당연하다. 경기부진이 이 정도로 심각했다면 국정을 넘겨받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새 정부의 신임 관료들이 상황을 몰랐을 리 없다. 몰랐다면 정말 무능한 것이고, 알고도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면 직무유기다. 한쪽에선 여전히 ‘창조경제’의 정체를 두고 당·정·청이 뜬구름 잡는 논란을 벌이는 와중에 새 정부의 경제팀은 급기야 경제가 예상 밖으로 어렵다는 폭탄선언을 내놓는다. 그러면서 경기회복을 위해서는 대규모 추가경정예산의 편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주택경기 부양을 위한 부동산대책도 내놨다. 그런데 그뿐이다. 추경을 언제 얼마나 해서 성장률을 얼마나 끌어올리겠다는 얘기가 없다. 대통령은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듯 여전히 “창조경제로 일자리를 만들고, ‘증세(增稅) 없이’ 공약이행 재원을 마련하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나마 경제팀이 제시한 15조원가량의 추경예산도 실은 경기부양 목적의 지출예산은 3조원에 불과하고, 나머지 12조원은 작년에 잡았던 세입예산 가운데 성장둔화로 날아간 세수부족분을 벌충하기 위한 것이다. 경기악화는 방치한 채 세수의 구멍을 메우기에 급급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나랏빚을 내서 세수부족분을 채워도 대통령이 약속한 복지공약 이행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할 방도가 묘연하다는 것이다.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고 지출예산을 줄여서 한 해 27조원의 공약이행 재원을 만들어내겠다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추경예산을 해도 공약을 다 이행하자면 재정은 거덜나고, 경기침체는 더욱 악화할 수밖에 없다. 다만 신임 각료와 청와대 보좌진 가운데 누구도 이 ‘불편한 진실’을 대통령에게 직언할 용기가 없을 뿐이다. 현실을 도외시한 정책은 결국 실패하게 돼 있다.

경제상황이 악화됐는데도 이를 반영하지 않고 ‘창조경제’와 ‘공약이행’에 매달린다면 결과는 뻔하다. 재정적자는 늘어나는데 공약이행은 못하고, 경기가 가라앉는 가운데 일자리는 줄어들고, 국민은 더욱 불행해진다. 증세를 통해 경기를 부양하고 복지공약을 지키라는 야당과 일부 여당의원들의 주장도 상황을 호도하기는 마찬가지다. 경제가 추락하는데 세율을 올리거나 세목을 늘린다고 기대한 만큼 세수가 늘어나지 않는다. 설사 세수가 늘어나더라도 성장률을 낮춰 다음해부터 다시 세수가 줄어든다. 경제가 어려운 판에 세금을 더 걷거나 빚을 내 복지를 늘리자는 것은 ‘구멍 난 배에서 한바탕 잔치나 벌이자’는 얘기나 다름없다.

 이제 박근혜 정부가 국민들의 불안을 덜고, 경제를 살려낼 방법은 한 가지다. 경제의 실상을 솔직히 국민에게 털어놓고, 복지공약을 다 지킬 수 없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리고 경기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국정의 목표를 다시 짜야 한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