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1마리당 12만원 손해 … 더 이상 못 버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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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전 충남 홍성군 은하면 대판리에서 양돈업을 하는 최준규(55)씨가 돼지축사를 둘러보고 있다. 최씨는 “처리 비용 부담으로 분뇨를 제때 치우지 못해 돼지가 지저분하다”고 말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전국 6040개 양돈 농가가 “생존의 기로에 놓였다”며 아우성이다. 돼지 값이 지난해 9월부터 7개월째 하락하고 있어서다. 2011년 구제역 홍역을 치른 양돈 농가들은 2년 만에 다시 위기를 맞았다.

 1일 오후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동암영농조합법인. 7년 전부터 5개 농가가 조합을 설립해 돼지 3만5000마리를 키우고 있다. 경기 북부의 대표적 축산 단지인 포천 지역에서도 손꼽히는 규모다. 이날 조합원들은 일손을 놓은 채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축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합원들은 “t당 1만5000원씩 드는 처리 비용이 부담스러워 분뇨도 제때 치우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농장에서는 매월 3억∼4억원의 적자가 발생하고 있다. 최근 6개월간 누적 적자는 20억원이다. 장영규(56) 대표는 “돼지 한 마리(80㎏) 도매가는 24만원인데 생산원가는 36만원”이라며 “마리당 12만원의 적자가 난다”고 말했다. 영농조합 측은 최근 어미 돼지 수를 3000마리에서 10% 줄이는 등 자구책도 마련했지만 역부족이라고 했다.

 전국 최대 양돈 단지인 충남 홍성에서 돼지 8000여 마리를 길러온 함모(59)씨는 최근 도산했다. 사료값 5억원을 갚지 못해 농장이 경매에 넘어간 것이다. 홍성군 정동우 축산과장은 “경영난으로 농장을 매물로 내놓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며 “양돈농가 줄도산이 임박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홍성군의 경우 299개 농가에서 47만8000여 마리의 돼지를 키우고 있다.

 농민들은 한·미 FTA 체결 등으로 수입육 물량이 많아진 게 가격 폭락의 주요 원인이라고 한다. 또 2년 전 구제역으로 돼지 값이 뛰자 수입업자에게 운송료를 보조하는 등 정부가 개입한 것도 가격 폭락을 불렀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바람에 축산농가만 희생됐다는 불만이다. 하지만 지자체 관계자 등은 “구제역 이후 무분별하게 사육 마릿수를 늘린 농가에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전국 양돈농가 대표들은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앞에서 돼지 가격 안정과 생존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1일부터 농성에 돌입했다. 협회 측은 “전국 양돈 농가 피해액이 가구당 평균 1억6000만원, 총 9500억원에 이른다”며 “현 상황이 3개월 이상 지속되면 80% 이상 도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협회는 사료 구매자금 긴급 지원 및 안정화 대책 마련, 정책자금 상환기간 연장 및 이자율 조정, 잉여물량 긴급 비축 지원 등을 촉구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과다 생산된 물량의 수매를 서두르고 왜곡된 가격구조 개선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도매가는 연일 하락하는데 소매가는 거의 변동이 없기 때문이다. 농협경제연구소 안상돈 축산경제연구위원은 “유통구조 개선도 필요하지만 삼겹살 등 인기 부위만 주로 찾는 소비 패턴도 바뀌어야 한다”고 진단했다.

전익진·신진호·최모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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