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품고 갔다간 ‘귀농대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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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신 귀농러시’는 새로운 흐름을 낳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성주인 연구위원은 “최근 2~3년 동안 귀농·귀촌 인구가 급증하면서 늙어가는 농촌 사회에 활력을 주고 도시에 사는 이들에게는 새로운 삶의 대안 모델을 제시했다”고 분석했다. 기존에는 없던 새로운 부가가치 사업을 일으키기도 한다. 식초명인 한상준씨의 경우 잡곡을 길러 식초를 담근다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이전보다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됐다. 인력을 고용해 지역 경제에도 기여했다. 그러나 귀농에 성공하기란 녹록지 않다. 본지 취재 결과 불과 1년여 전에 귀농 우수사례로 소개됐던 농가가 농사를 그만두거나 아예 외국으로 떠난 경우도 있었다.

 성 위원은 “새로 땅을 구하기가 쉽지 않고 농사일이 서툴러 일반 농가보다 소득이 낮은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그 때문에 고향 등 연고지를 찾는 것이 성공확률을 좀 더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채상헌 천안연암대 귀농지원센터장은 “쉽게 생각하고 왔다가 몇 년 내에 모은 돈을 다 날릴 수도 있다”며 “도시와 달리 재출발이 쉽지 않기 때문에 전문가로부터 철저한 교육을 받고 와야 한다”고 말했다. 농림축산식품부·농협 등에서 연간 약 7000명의 귀농교육비를 지원하는 이유다. 농촌진흥청이 월 80만원씩을 부담하고 귀농희망자가 농가에서 숙식하며 인턴으로 일하는 제도(귀농인 현장실습 지원)도 있다.

전문가들은 억대 매출을 기대하는 것도, 모아둔 자산이 있으니 농사나 지어봐야지 하는 마음도 금물이라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기존의 시골 주민들과 잘 어울리는 것이 관건이다. 채 센터장은 “기존 농촌을 휘저어 놓고 마을 땅값 다 올리고 지역 사람들과 못 어울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환상만 품고 왔다가 귀농대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농촌을 지켜온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돌아가서 살 수 있다는 감사함과 겸허함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농식품부도 올해부터 귀농 교육에 의무적으로 ‘관계 관리’를 포함시키도록 하는 등 갈등 해소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구희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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