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오늘의 촛점(3) 한·독 관계 어제와 오늘과 내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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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분단의 비극>
3월2일 김포공항에 내린 「뤼프케」대통령은 연도를 메운 시민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우리는 독일국민에의 각별한 공감과 이해를 그에게 표시한 것이다.
한국과 독일은 2차 전후 20년이 넘도록 전후처리의 숙제로 남겨져있다. 국제정치의 압력은 양국의 자주적인 통일에의 길을 가로막고 있다. 민족의 분열, 국토의 분단이 빚어내는 비극이 어떠한 것인지 우리만은 알고 있다. 장벽을 뛰어넘다 흉탄에 쓰러진 독일 청년의 비운을 우리는 뼈저리게 공감한다.
아무 기약도 구체적인 전망도 현재로는 없지만 우리는 통일에의 의지를 버리지 못한다. 민족분열의 비극을 불가항력적인 기정사실로 용인하려야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떠한 완강한 국제체제도 민족의 분열을 영속화시킬 수는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뤼프케」대통령의 방한은 한·독 양국의 공동운명을 다시 한번 다짐하고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협력관계를 더욱 확고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 틀림없다.
한·독 교류의 역사는 80년이 넘는다. 현대사의 진원인 독일은 우리에게도 여러 가지 파문이 밀어닥치게 했고, 국제정치의 격류 속에 좋은 관계만 지녀온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우리와 직접 맞부딪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독일에 대한 우리의 감정은 다른 어느 나라에 대해서보다도 좋은 편이다.

<지성의 뿌리>
개화이후 독일문학의 영향은 광범하고 뿌리깊다. 특히 인문·사회과학·의학분야에서는 독일학문이 모체를 이루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많은 독일의 거인들이 우리 사상계에 깊은 뿌리를 이루고 있다. 1차 전후에 등장한 실존철학은 우리 지성 계에 줄곧 커다란 영향을 끼쳐 오고있다.
해방이후 우리는 미국의 압도적인, 영향 밑에 살아 왔으나 실질적인 관계가 거의 없었던 독일의 문학적 영향은 약해지지 않았다. 그러기에 패전국 독일의 언어를 우리의 나이 어린 학생들이 열심히 배웠던 것이다.

<협조의 실적>
한·독 양국이 정치·경제의 실질적인 차원에서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된 것은 제3공화국 수립 후이며 64년 12월 박대통령의 방독으로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박대통령과 「에르하르트」전 수상은 『국토통일이 군사적인 수단이 아닌 평화적인 방법으로 달성돼야 한다』는 데 합의했고, 1억5천9백만「마르크」의 장기재정 및 상업차관을 위한 한·독 경제협정이 박대통령 방독 중에 체결되었다. 미·소 양극체제에서 다극화 해가는 국제정세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미국의 경제원조에만 의존하는 파행적 경제를 탈피하기 위해서 다변적 협력체제를 성취하려는 우리정부의 노력이 결실한 것이다.
한·독 경제협력은 61년 12월에 확정된 차관 1억 5천만 「마르크」와 64년의 1억5천9백만「마르크」, 기타 민간 차관을 합쳐 66년 말까지 미화로 총계 8천3백35만불에 달한다. 대 독 무역은 수출이 6백65만불, 수입이 1천7백73만불 이다. 자본거래와 무역 면에서 독일은 미국과 일본 다음의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입장의 차이>
이번 「뤼프케」 대통령의 방한은 한·독 경제협력에 새로운 또 하나의 전기를 이룰 것이다. 또한 한·독 정상회담은 두 나라가 국제사회에서 협력할 방안을 토의할 기회라는 점에서 중대한 의의가 있다. 한·독 양국은 국제 정치적 여건이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상반된 추세에 놓여있다. 「유럽」에서는 동서대립이 완화되어 가고 있는데 「아시아」는 긴장이 고조되어 가고 있다.
「키징거」정권이 두 개의 독일을 인정하지 않는 「할슈타인」원칙을 수정하고, 「루마니아」와 국교를 여는 등 공산권과의 적대관계를 완화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 일이며 우리와의 입장의 차이를 실감케 한다.

<체험의 교환>
이러한 직접적인 협력관계도, 물론 필요하지만 그 보다도 우리는 서로의 체험을 광범하게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과, 독일이 겪고 있는 현실은, 역사상 유래가 없는 일이며 따라서 전례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일이다. 독일이 정치적으로, 분할된 때는 전에도 있었지만 문화적인 통일성은 확고했었다.
그러기에 독일 문화는 세계사적인 가치와 생명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독일의 분할은 文化의 통일적인 기반에까지 영향을 줄 수도 있는 것일 듯하다.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로 인해서 문화적 「패턴」자체가 변질하고 있는데 통일됐을 때 어떻게 다시금 민족적인 일체성을 회복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로 되고 있는 우리는 독일인의 체험과 노력에서 배울 것이 많을듯하다. <글 김상기·사진 이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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