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동태의 문젯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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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재무부는 금융기관의 유동성이 계속 급속히 팽창될 것에 대비하여 한은에 통화안정계정을 설치하고 한편으로 재정안정증권을 발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 보다 강력한 유동성 규제를 할 수 있게 하려하고 있는 듯하다.
재무부의 이러한 정책구상에 반하여 김 한은총재는 한은의 확대간부회의 석상에서 당면한 금융정책과제로서 ①금리체계의 간소화 ②역금리의 시정 ③외환부문에서 창조되는 통화의 효과적인 흡수 ④외환관리체제의 강화 등이 해결되어야 할 것임을 강조했다 한다.
얼핏보기에는 재무부나 한은이 다같이 통화팽창을 효과적으로 막기 위하여 구상하고 있는 것 같으나 그 정책양식에 있어서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을 것 같다. 재무부는 현재의 통화증발 「메커니즘」을 전제로 하고 이를 어떻게 흡수시킬 것이냐에 촛점을 두고 있는 반면, 한은은 외환부문에서 창조되는 통화증발 자체를 효과적으로 억제시켜야 할 것을 묵시적으로 주장하면서 비현실적인 금리체계를 정리해야 할 것임을 강조하는 입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지난 65년 9월 말에 실시한 금리현실화 조치로 금융질서는 혼란상을 격화시켜가고 있으며 이러한 혼란이 외자도입에 따라서 창조되는 통화증발로 더욱 심화되고 있음을 볼 때 통화관리나 금융의 정상화를 위한 획기적인 정책전환이 있어야 할 것이라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오늘날의 금융동향은 실로 무질서와 혼란을 거듭하고 있어 금융정책의 부재상을 노정 시키고 있다. 한편으로는 2백억원을 넘는 자금이 동결되고 있는 실정인데 내자동원을 강화시킨다는 명목으로 지방은행을 설립해 주겠다고 하는 것도 문제이거니와 정치적 대출을 계속하여 일반어음의 재할도 불가피하게 허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금융현실은 통화안정계정의 신설이나 재정안정증권의 발행으로 정상화될 수도 없는 성질의 것이며 금리체계의 정상화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도 아닌 성싶다.
오히려 문제의 촛점은 딴 데 있다는 것이 우리의 솔직한 견해이다. 현재의 개발정책, 나아가서는 외자도입정책이 계속되는 한 금융정책이 존재할 수는 없는 것이며 따라서 금융의 자율화, 정상화를 논한다는 것은 잠꼬대에 불과할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조달기금, 농산물가격안정기금 및 외환특별회계기금이 불가피하게 한은차입으로 마련되지 않을 수 없는 이상 금융에 여유가 있을 수도 없을 것이라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다.
이와 같이 본다면 개발정책, 외자도입정책, 그리고 재정수지라는 금융여건이 재편성되지 않는 한 금융정책은 수동적인 범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며 그러한 여건의 정비가 있고 나서야 비로소 금리체계의 재정비, 금융의 정상화를 운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금융부재 금융혼란을 수습하지 않는다면 심각한 파동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것도 또한 간과할 수 없는 것이므로 금융의 정상화·자율화 문제를 묵살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따라서 금융정책이나 금융의 정상화라는 좁은 시야에서 통화·금융문제를 다룰 것이 아니라, 개발정책·외자도입정책·재정수지 그리고 물가안정이라는 높은 차원에서 금융문제를 연역해 나가야 할 것임을 강조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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