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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서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옛날 황하 상류에 용문이라는 협곡이 있었다. 물살이 급하고 사나운 목이 되어서 잉어가 이 물목을 무사히 거슬러 올라야 비로소 용이 될 수 있다는 전설이 있었다. 그래서 올라서기가 어렵고 비좁은 난관을 뚫어 출세와 영달이 약속되는 것을 두고 등용문이라고 한다.
등용문의 출전은 후한서라는 옛날 옛적 책인데, 그때 이모라는 유명한 정치가가 있었다던가. 이 사람을 한 번이라도 만나기만 하는 날이면 용문에 오른 것과 같다고 해서 세상에 퍼진 말이라니, 이른바 「백」의 유래도 그리 만만치는 않을 모양이다.
그런데 용문에는 천하의 바다와 냇물에서 내로 라는 대어들이 수없이 몰려들어 그 사납고 급한 물목을 오르려 하는데, 대다수는 머리를 부딪쳐 정신이 얼떨떨한 채 되돌아서기 마련이므로, 등용문의 반대어로 「점액」이란 말이 있다. 이것은 점상액의 준말인데,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이마만 다치고 말았다는 얘기의 경우 쓰이게 된다.
당대만 하더라도 진사시에 급제하는 것을 등용문이라고 했는데, 서울특별시가 3월초에 시행하리라는 학사서기의 채용시험도 합격하기의 지난한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당대 진사시의 유가 아닐지 모르겠다.
서울특별시는 지난해 6백명의 4급 공무원을 학사서기의 이름으로 뽑아 3백23명을 그 직에 임명했고 나머지 2백77명은 앞으로 부정 공무원으로 적발된 사람들을 내 보낸 다음에야 임용하리라는 얘기다. 그리고 또 6백명을 새로 뽑는다니, 작금 양년의 서울특별시에서 만도 1천2백명의 4급직 공무원이 교체되는 셈이다.
갑자기 많은 수의 실무자를 가는 것이 시 살림에 얼마나 「특별」한 기여를 하는지도 모를 일이거니와, 학력을 묻지 않기로 된 4급직 임용시에 학사의 굴레를 씌워 많은 인재로 하여금 등용문 근처에도 못가 본 채 점액부터 하게 한 것은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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