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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 피천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스탠더드」석유회사 「런던」지점에 다니던 시인「월터·델라메어」를 생각하면서 내가 「텍사스」석유회사 서울지점에 석 달 동안이나 취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어느날 오후 「그레이스」라는 「타이피스트」가 중요한 서류에「미스」투성이를 해놓았다. 애인을 떠나보내고 눈에 눈물이 어려서 그랬다는 것이다.
『간다 간다기에 가라 하고서는 가나 아니가나 문틈으로 내다보니 눈물이 앞을 가려서 보이지 않아라』이별의 눈물은 지금이나 예나 다름이 없다.
나는 어려서 울기를 잘하였다. 눈에서 눈물이 기다리고 있듯이 울었다. 「사랑의 학교」라는 책 속에 있는 「난파선」이야기 위에는 나의 눈물자국이 있었다. 「채플린」이 대리고 다니던 「재키·쿠간」이라는 어린 배우는 나를 많이 울렸다. 순이가 나하고 아니 논다고 오래오래 울기도 하였다. 입이 찝찔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찝찔한 눈물 H2O보다는 약간 복잡하더라도 눈물의 분자식은 다 같을 것이다. 그러나 그 눈물의 다양함이여! 이별의 눈물, 회상의 눈물, 체념의 눈물, 아름다운 것을 바라다볼 때의 눈물, 결혼식장에서 딸을 인계하고 나오는 아빠의 눈물, 그 정한이 무엇이든 간에 비 맞은 나무가 청신하게 되듯이 눈물은 마음을 씻어준다.
눈물은 인정의 발로이며 인간미의 상징이다. 성스러운 물방울이다. 성경에서 아름다운 데를 묻는다면 하나는 이역 옥수수 밭에서 향수의 눈물을 흘리는 「로스」의 이야기요, 또 하나는 「누가복음」7장, 한 탕녀가 예수의 발위에 흘린 눈물을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씻고 거기에 향유를 바르는 장면이다. 미술품으로 내가 가장 아름답게 여기는 것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이다. 거기에는 「마리아」의 보이지 앓는 눈물이 있다. 저 많은 아름다운 노래들은 또한 눈물을 머금고 있지 아니한가.
『도시에 비 내리 듯 내 마음에 비가 내린다』
이 「비 내리는 마음」이 독재자들에게 있었더라면 수억의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2차대전 때 일본에는『개솔린 한 방울 피한 방울』이라는 기막힌 표어가 있었다. 석유회사 「타이피스트」「그레이슨」의 그 눈물에는 천만「드럼」의 정유보다 소중한 데가 있다. <서울대 사대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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