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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금값 떨어져도 변치 않는 한국인의 금 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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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금(金)입니다. 네 맞습니다. 앞에 누를 황(黃)자를 붙여 황금으로 불리는 그 금입니다. 저만큼 인간의 사랑을 독차지한 물건도 없을 겁니다. 남녀노소, 동서고금이 따로 없죠. 저를 놓고 벌어진 애증 싸움, 일일이 얘기하자면 입만 아픕니다. 그런데 갑자기 웬일이냐고요? 하소연할 일이 하나 있어서 나왔습니다.

 요즘 제 인기가 말이 아닙니다. 저를 바라보는 시선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금 상장지수펀드(ETF) 아시죠. 2003년 호주에서 처음 만들어져 제 몸값 올리는 데 톡톡히 기여했던 친구 말입니다. 지난해까지 2500t의 금을 사들여 ‘민간 중앙은행’으로 불렸죠. 미국·독일 중앙은행을 빼면 누구보다 금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그랬던 이 친구, 요즘 변심했습니다. 올해 들어 두 달여간 금을 140t 넘게 팔아 치웠습니다. 사상 최대 규모라며 파이낸셜타임스(FT)가 이달 초 1면에 대서특필하기도 했습니다. 1900달러를 넘던 제 몸값이 요즘 트로이온스당 1600달러를 밑돕니다. 이를 두고 세계 주요 증시에선 ‘금의 시간이 끝나고 주식의 시간이 왔다’는 수군거림이 일제히 나오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물론 제가 금융불안이나 인플레이션을 먹고 사는 건 맞습니다. 세상이 안정되면 외면받는 제 운명, 받아들입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최근 셰일가스 붐으로 미국 경제가 물가 오를 걱정 없이 좋아지고, 유럽 위기도 진정세에 접어들었다. 오래 빌빌대던 일본마저 꿈틀거린다. 그러므로 금, 너의 시대는 끝난 게 맞다”고.

 과연 그럴까요. 한국·터키·멕시코 등 주요 신흥국 중앙은행들이 금을 사들이고 있습니다. 셰일가스 붐에도 국제 유가는 크게 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유가는 제 몸값과 정확히 흐름이 일치합니다. 게다가 인도·중국의 금 장신구 소비가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금 수요의 절반은 장신구입니다. 또 있습니다. 금광업체들의 생산비용이 온스당 1500달러에 근접했습니다. 이젠 지구상에 별로 안 남은 금을 억지로 캐내느라 그만큼 비용이 늘어난 겁니다.

 무엇보다 큰 위안은 여러분, 한국인들의 금 사랑입니다. 요즘 한국에선 골드바(금괴) 사재기 열풍이 거셉니다. 신한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월 평균 200㎏쯤 팔리던 게 올핸 한 달에 500㎏ 넘게 팔린답니다. ‘절세(節稅)’가 큰 이유입니다. 새 정부의 지하경제 양성화와 금융종합소득세 강화를 다 피해가는 절묘한 수단이 골드바입니다. 금괴는 법적으로 화폐가 아니라 양도·상속·증여세를 물릴 근거가 없습니다. 덕분에 6000만원가량 하는 1㎏짜리 골드바는 없어서 못 팔 정도랍니다. 이런 금 사랑이 이어지는데, 어찌 제 시대가 끝나겠습니까. 고맙습니다, 한국인 여러분, 잊지 않겠습니다.

글=이정재 논설위원·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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