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엿보기] 청약 미달 이유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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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우정건설이 지난 13~14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서 분양한 주상복합아파트 우정에쉐르(11~35평형, 77가구)에 청약한 사람은 20여명에 불과했다.

지난해 12월 말 인근에서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내놓은 주상복합아파트 트라팰리스(2백45가구)에는 2만3천여명이 몰려 평균 94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브랜드 파워 영향이 있다지만 비슷한 시기, 같은 지역에서 나온 같은 상품 청약 결과가 이처럼 차이가 날까.

이유가 있었다. 우정건설은 일부러 미달을 유도했다. 모집공고를 일간신문에 한차례 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떴다방(이동식중개업자)이 몰리지 않았고 미분양이 많이 생겼다. 자연 프리미엄도 붙을 리 없었다.

지난 15일 청약자의 절반 정도가 계약하면서 가수요가 빠졌다고 여긴 우정건설은 본격적인 분양 홍보에 나섰다. 일간지에 광고를 쏟으며 미계약분(60여가구)에 대한 선착순 분양에 들어갔다. 50가구 정도가 추가 계약해 현재 계약률은 70%대다.

우정건설 관계자는 "높은 경쟁률은 떴다방만 재미 보고 실수요자나 공급업체엔 손해"라며 속사정을 털어놨다.

떴다방들이 분양권 전매차익을 노리고 많게는 수십 건씩 청약하기 때문에 실수요자의 당첨기회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당첨자가 발표되면 떴다방이 분양권 웃돈을 부풀려 단물만 빼먹고 빠진다.

청약금 반환 등 높은 경쟁률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업체의 인력.시간 낭비도 심하다. 웃돈이 기대한 만큼 붙지 않으면 당첨된 가수요자들이 계약을 포기하므로 계약률은 낮게 마련이다.

이 때문에 요즘의 주상복합아파트 시장을 두고 주택업체들은 청약경쟁률만 높고 계약률은 형편없이 떨어지는 '빛좋은 개살구'로 여긴다.

실제로 높은 경쟁률을 올린 삼성 트라팰리스 초기 계약률은 기대 이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1월 말 분양 당시 60대 1의 경쟁률을 보인 삼성동 우정에쉐르 초기 계약률도 그다지 높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이 때문에 업체들은 계약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낙첨자들 가운데 실수요자들을 찾아나설 수밖에 없다.

두 번 일을 해야 하는 셈이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높은 경쟁률은 허울 좋은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삼성은 청약 열기를 식히려고 분양권 전매를 4개월간 금지했으나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를 지켜본 우정건설의 판매전략이 '슬그머니 분양'이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실수요자를 끌어들여 '명분'(경쟁률)보다 '실리'(계약률)를 챙기기로 했던 것.

다음달 6~7일 만리동에서 주상복합 72가구를 내놓는 대우건설도 청약 거품을 은근히 걱정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법으로 떴다방을 막을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우정건설 유민석 팀장은 "떴다방이 기승을 부릴 수밖에 없는 주상복합 청약제도를 손질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안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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