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FOCUS] 슬라브족 봄맞이 명절 ‘마슬레니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7면

슬라브 민족의 봄맞이 명절인 ‘마슬레니차’ 축제. 전통복 차림의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각종 놀이를 즐기고 있다. AFP/East NEWS
마슬레니차 대표 음식 ‘블린’을 들고 있는 소녀.

‘마슬레니차’ 혹은 ‘팬케이크 축제 주간’은 고대 루시(러시아의 옛 이름)가 기독교를 받아들이기 이전인 이교 시대에 탄생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슬라브족의 봄맞이 명절이다. 겪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러시아의 겨울은 혹독하다. 그러고는 봄이 ‘휘리릭’ 하며 성큼 다가온다. 갑자기 세진 햇빛이 얼음과 눈을 녹여 순식간에 천지가 질퍽해지고 물을 흠뻑 들이켠 풀은 훌쩍 웃자란다. 이 황금 같은 순간을 기념하는 명절이 바로 이 마슬레니차다.

얼어붙은 몸과 마음에 휴식을 줘야 한다. 당연히 먹는 게 중심이다. 이 축제가 이어지는 1주일 동안 1년 중 가장 즐겁게 놀며 배불리 먹는다. 올해 마슬레니차 주간은 3월 셋째 주다. 마슬레니차에서 먹는 음식의 대명사는 러시아의 전통 팬케이크 ‘블린’. 적당하게 번역할 말이 없다. 서양에선 팬케이크로 번역되지만 그것과도 다르고, 한국의 밀가루 지짐을 닮았지만 역시 다르다. 어쩌면 두께만 보면 한국 쪽과 더 비슷할지 모른다.

블린 만들기는 오랜 이교 전통에서 비롯되었지만 러시아 정교회 신앙에 깊숙이 뿌리박고 있다. 이교 전통이라고 한 것은 슬라브 민족의 신화에서 봄을 상징하는 신 혹은 태양의 신인 ‘야릴로’가 겨울의 암흑을 몰아내면 이를 기념해 따뜻한 태양을 상징하는 노랗고 둥근 블린을 구워 먹는 것이다. 고대 슬라브인들은 봄을 ‘야르’라고 했는데, 이 단어가 ‘야릴로’의 어원이라는 설이 있다. 그래서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되는 기간에 축제가 자연스럽게 시작되는 것이다.

이 명절을 앞둔 러시아 전역에서는 일가친척이 모여 ‘수천t’의 블린을 만들어 먹으며 사순절 금식과 봄의 도래를 준비한다. 마슬레니차 주간이 시작되는 월요일부터 블린을 만들지만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집중적으로 먹는다.

블린 요리의 핵심은 뭘 넣느냐에 있다. 한국인이 더 편하게 이해하려 한다면 커다랗고 얇은 만두피를 프라이팬에 지진다고 상상하면 된다. 다만 만두와 달리 속을 ‘넣지 않고’ 찌거나 삶지도 않는다. 블린은 지져낸 다음 즉석에서 ‘고명을 얹은 뒤 말아서’ 먹는다.

러시아인들이 얹는 고명은 ‘가장 비싼 음식’이라는 캐비어, 절인 버섯, 야생 딸기 같은 과일의 잼, 꿀, 약간 시큼하고 김치처럼 러시아인의 밥상에서 분리할 수 없는 스메타니 크림, 버터를 얹는다. 이외에 뭘 얹어 먹어도 상관없다. 아무도 안 말린다.

매년 블린 대회도 러시아의 많은 도시에서 열린다. 누가 제일 큰 블린을 굽는지를 경쟁한다. 피자 대회인 셈이다. 올해는 시베리아의 블린 애호가들이 지름 3m 크기의 거대한 블린을 구울 계획이라고 한다.

마슬레니차 기간에 물론 블린만 만들어 먹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놀이가 있다. 남자들은 ‘전통적’인 주먹 싸움을 벌이고 나란히 묶인 세 마리 말이 끄는 ‘트로이카’나 썰매를 타고 용맹함을 뽐내기도 한다. 여성들을 잡아 끄는 것은 아무래도 거리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공연이다. 밤에는 횃불놀이와 모닥불 축제가 이어진다.

올가 리피치 기자

본 기사는 [러시스카야 가제타(Rossyskaya Gazeta), 러시아]가 제작·발간합니다. 중앙일보는 배포만 담당합니다. 따라서 이 기사의 내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러시스카야 가제타]에 있습니다


또한 Russia포커스 웹사이트(http://russiafocus.co.kr)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