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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복지기능 강화 절실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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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장영
금융연수원장

얼핏 들으면 금융과 복지는 무관한 주제 같지만 금융 부문에서도 소외계층의 충격을 줄여 주거나 재기할 수 있게 지원하는 ‘금융 포용(financial inclusion)’이라는 복지기능이 주목을 받고 있다.

 금융의 지원이 절실한 취약계층이 오히려 시장에서 밀려나는 ‘금융소외현상’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 기본적으로 시장의 불완전성 때문이다. 금융회사는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부실 가능성이 적은 담보 여신 등을 선호하는 반면 신용 정보가 부족한 저소득 계층에 대한 신용대출은 꺼리게 된다. 특히 요즘처럼 경제가 어렵고 소득의 양극화가 심화되면 저소득층은 고소득층보다 높은 금리를 지급하는 역차별을 받게 되거나 아예 접근조차 하지 못하는 ‘시장의 실패’가 발생한다.

 그 단적인 현상이 지난 5년간 대부업체 이용자 수가 3배 늘어난 250만 명에 달한다는 것이다. 이는 경기악화로 서민 계층이 늘어난 탓도 있지만, 서민 금융서비스를 담당하는 저축은행 등의 존립 기반이 취약해지면서 신용공급이 줄어든 결과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장의 실패를 보정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시장개입이 정당화된다. 정부는 2009년부터 금융소외계층을 포용하기 위해 미소금융, 햇살론, 새희망홀씨 등 다양한 ‘정책성’ 서민금융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 운영에 대해 실효성이 떨어진다거나 자격 요건이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지적도 있다.

 또한 선진국형 마이크로 파이낸스에 비해 과학적인 신용위험평가가 부족하고, 창업 및 경영 컨설팅 기능이 부족해 성과를 내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정책성’ 서민금융의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수요에 비해 턱없이 적다는 점과, 대출금을 갚지 않아도 된다고 여기는 ‘도덕적 해이’의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우선 공급 부족이라는 시각에서 향후 서민금융정책의 초점은 다양한 서민금융회사가 신용대출서비스를 원활하게 확대할 수 있도록 시장구조와 법적·제도적 기반을 개선하는 데 두어야 한다.

 이를 위해 첫째, 은행·여신전문회사·저축은행·상호금융회사의 서민금융 기능을 강화하되 금융권별로 특성에 맞게 기능을 정립함으로써 시장구조를 중층화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되면 금융기관들이 각각 신용등급과 금리 및 대출조건을 달리하는 금융상품을 개발해 시장원리에 따라 공급을 늘리게 될 것이다. 둘째, 저축은행과 상호금융회사 등 ‘지역밀착형’ 금융기관이 시장의 주요 축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구조조정과 규제완화를 병행해 추진할 필요가 있다. 부실기관의 퇴출 등 건전성 감독 정책은 강화하되 자본금 확충을 전제로 업무영역 규제 등을 완화함으로써 안정적 수익원을 확보해줄 필요가 있다. 셋째, 정부는 서민금융을 취급하는 데 수반되는 높은 신용위험을 상쇄할 수 있도록 신용보강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나치게 높은 가산금리의 책정을 막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은 고객별 신용위험평가시스템(CSS)을 구축해 과학적인 신용위험관리가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도덕적 해이 문제를 예방할 수 있는 장치를 갖추는 것도 중요한 대책이다. 저축은행 등 서민금융 공급자에 대해서는 소유 및 지배구조의 개선이 중요하며, 가계 등 수요자에 대해서는 엄격한 대출심사와 신중한 채무조정 장치를 마련, 대출금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막연한 기대심리부터 차단해 나가야 한다.

 끝으로 이러한 목표가 어느 정도 달성되면 중장기적으로는 위기 단계에서 가동된 정책성 서민금융을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대신 시장기능을 통해 서민금융이 지속적으로 공급되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이 장 영 금융연수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