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정책기조 연설의 시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제59회 임시국회는 지난 17일에 대통령 연두교서를, 그리고 21일엔 민중당 정책기조 연설을 각각 들었다. 한편 의석을 갖지 못하고 있는 원외야당인 신한당은 18일 「드라머·센터」에서 정책기조 연설을 했다.
우리가 이와 같이 대통령 연두교서에 접하고 여야 각 당의 정책기조 연설을 듣는 정치적 관례는 64년부터 비롯되었다. 그런데 그 동안의 실적을 되돌아본다면 교서나 각 당의 정책기조연설을 한결같이 관념적인 일반론이나 극한 용어에 치우치는 경향이 없지 않았었을 뿐더러 당해 연도에 실시하고야 말겠다는 구체적인 시책이 목표나 내용의 제시를 결하고 있었다. 특히 미구에 실시될 두 개의 선거를 앞둔 올해의 교서나 각 당의 기조연설은 마치 향후 4년에 걸치는 집권강령 같은 인상마저 짙었다.
그러면 시기적으로 연두에 그것도 지난 한해를 수놓을 정책의 내용을 담지도 않은 이런 식의 정치적 관례를 타성적으로 그대로 되풀이해야할까. 우리는 몇 가지 점에서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첫째, 미국과 같이 회계연도 초가 7월로 되어 있는 국가에서는 1월중에 대통령의 일반교서 및 예산교서, 그리고 경제보고서 등을 발표하는 것에 아무런 부자연스러움이 없다. 그러나 우리와 같이 이미 전년의 정기국회에서 새로운 한 해의 서정백반을 징세한데 까지 예산으로 확정지어 놓고 있는 처지에 있어서는 연두라 해서 의례적으로 밝혀지는 교서나 각 당 기조연설의 발표에서 별 의의를 발견할 수가 없다. 또한 의의가 없을 뿐만 아니라, 반드시 예산의 기초 위에서는 현대 국가 경영의 원칙에도 벗어난다. 따라서 그것은 엄밀한 의미에 있어서 허구인 것이다.
교서나 각 당의 정책기조 연설은 그렇기 때문에 임시국회에서 다루어질 것이 아니라, 매년 9월의 정기국회에서 다루어져야 마땅할 것이라는 것이 우리의 의견이다.
둘째, 해마다 반복되는 이 행사가 시간적인 구획성을 갖추지 못한다면 그것은 무의미하다. 마땅히 여·야는 지나간 한 해를 결산하고 새로운 한 해의 국정운영을 위한 저마다의 입장을 구체적인 정책의 제시를 통해서 밝혀야 할 것이다. 그러한 시간적 구획이 없기 때문에 예산과의 관련도 없는 교서나 정책기조 연설은 오래 공소하게 마련이 있다. 그리하여 국민들은 올해를 보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먼 훗날의 구름에 싸인 것 같은 설화들을 일방적으로 감상 당하였던 것이다.
이른바 「비전」의 제시는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무슨「비전」이 해마다 되풀이 돼야하며, 국민들은 무엇 때문에 오늘을 보지 못하고 내일만 보아야 한단 말인가.
해마다 거듭되는 이 연두국회 행사가 원칙적인 면에서 공전하는 느낌을 안는 우리는 여기에 몇가지 제의를 하고자 한다. 대통령의 일반교서나 예산교서, 또는 각 당의 정책기조 연설 할 것 없이 연두에 행해지던 모든 것을 9월의 정기국회에서 행하였으면 한다.
그리고 그것은 연례적 행사인 만큼 연차적인 내용을 구체적인 정책의 제시를 통해서 밝히는 것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