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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경제는 충격의 소용 돌이에서 벗어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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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12일 아침에 눈을 뜬 뉴욕 시민들은 전날의 악몽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뉴욕과 미국, 그리고 전세계가 하던 일을 멈추고 TV에서 수차례 반복되는 자살테러 장면을 지켜봤다. 비행기 이륙이 전면 금지되고, 증시는 폐장됐으며, 전세계적으로 투자와 소비가 위축되기 시작했다. 얼마후 세계 경제 포럼(WEF) 지도자들은 뉴욕과의 연대를 보여주기 위해 차기 포럼 개최지를 스위스 다보스에서 뉴욕으로 바꾸었다.

이번주 각국의 정·재계 인사들이 삼엄한 경비 속에 뉴욕으로 모이고, 反세계화 시위대도 이들을 뒤따를 것이다. 이번 세계경제포럼의 과제는 세계적인 경기침체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논의하는 것이다. 경기회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낙관주의다. 그러나 아직도 테러리스트를 체포하지 못한 상황에서 낙관론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비이성적 과열’이라는 10년간의 호경기가 끝난 지금 낙관주의는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올바른 대답을 하려면, 우선 9·11 테러가 경제에 미친 영향부터 확인해야 한다. 경제지표 자체는 희망적이다. 테러 이후 미국 경제는 한동안 얼어붙었지만, 지금 대부분의 지표는 경기가 급속히 회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실 9·11 사태는 ‘경제위기’라고 부르기도 어렵다.

미국에 대한 최악의 테러였던 진주만 공습에 비하면, 9·11 테러의 경제적 여파는 미미하다. 1973·80·90년의 유가급등 같은 일반적인 경제위기와 비교하더라도 9·11 사태는 실업률·인플레·세계경제구조 같은 기본적인 요소에는 거의 영향을 주지 않았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경제학자 로버트 리튼은 “9·11 테러로 경제가 받은 충격은 대부분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제가 예전과는 다르다는 불안감이 여전히 남아 있다. 이것은 위에서처럼 숫자로 표현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9·11은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일쇼크는 70년대 암울한 스태그플레이션의 신호탄이었고, 진주만 공습의 충격은 미국의 국력을 결집해 대공황을 극복하는 출발점이었다. 반면 9·11은 ‘마지막’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테러사태 이후 세계경제의 원리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크게 달라졌다. 첨단기술이 다시 경제호황을 불러올 수 있다거나, 미국 경제가 개선되면 5%의 성장률로 영원히 전진할 수 있다는 희망은 모두 사라졌다. 9·11 이후 사람들은 가능성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9·11 테러로 사람들은 1990년대 호황의 기억을 깨끗이 잊게 됐다. 이제 낙관주의의 시대는 가고 상식의 시대가 열렸다. 닷컴 거품도 1980년대 일본의 부동산 거품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기본적인 경제원리는 여전히 유효하다. 경기에는 주기가 있고, 주가는 하락할 수 있으며, 기업은 돈을 벌어야 한다. 오래전에 전기 모터가 기업의 생산성을 높였듯, 디지털 기술이 보급돼 생산과정에 이용되면 생산성은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생산성 향상이 낙관론자의 생각만큼 크지는 않을 것이다.

10월 6일 다우지수는 9월 10일 수준으로 회복됐다. 투자자들이 그동안 1조7천억달러를 주식시장에 쏟아부은 덕분에 증시는 살아났지만, 가치판단의 기준이 달라졌다. 성장에 대한 갈망, 위험의 감수, 기술의 신격화, 진보와 인간본성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 이런 것들은 이제 줄어들었다. 이제는 제한된 낙관주의의 시대다.

이러한 새로운 리얼리즘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이해하려면, 새천년의 경기침체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알아봐야 한다. 20세기의 경기침체는 대부분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었다. 소비가 증가하자 인플레가 생겼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이를 막기 위해 금리를 인상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기업의 과잉 기술투자가 경기침체를 야기했다.

기업들은 ‘인터넷 미래’에서 엄청난 돈을 벌어줄 것 같았던 컴퓨터와 하드웨어에 수천억달러를 퍼부었다. 주가는 닷컴의 꿈을 먹고 하늘로 치솟았고, 이 때문에 투자는 더욱 과열됐다. 경제가 성장하자 모든 기업들이 비디오게임부터 에스프레소 커피 기계까지 생산량을 늘렸다. 호황이 끝나간다는 것이 분명해지자 기업은 생산을 중단하고 주식을 매각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봄 경제는 이렇게 멈추었다.

비행기 두대가 세계무역센터에 충돌한 후, 최소한 심리적으로는 미국이 경기침체에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9·11 테러 이후 인텔·루슨트社 등 대표적인 미국 기업이 수만명을 감원했지만, 이것은 우연히 시기가 일치한 것일 뿐이다. 정리해고는 이미 진행 중인 경기침체의 결과물이었다. 그렇지만 올해 실업률은 6.5% 이상을 넘어설 것 같지는 않다.

대공황때의 24.9%나 1970년대의 8.5%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다. 1973년 유가가 4배 뛰어오르면서 미국 경제 전체는 큰 타격을 받았다. 인플레가 일어나 달러화 가치는 떨어졌고, 나아가 달러에 기반한 전후 국제금융 및 환율 시스템이 흔들렸다. 그러나 지난 몇달간 달러화 가치는 안정적이었다. 덕분에 금리를 인하해도 인플레가 일어나지 않았으며, 세계 경제에도 별다른 악영향이 없었다. 프린스턴大 경제사학자 해럴드 제임스는 “9·11로 생긴 피해는 달러화 가치가 급락한 오일쇼크에 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가을 경제지표는 전반적으로 하락하고 있었다. 거기에 9·11이 미친 영향은 단발성의 흔들림이었을 뿐이다. 공업생산은 이미 4분기째 내리막길을 걷고 있으며, 그 하락 속도가 9·11 이후 조금 더 빨라졌을 뿐이다. 90년대 후반 ‘기적의 미국 경제’를 이끈 것으로 평가된 반도체의 판매량은 경기변화의 좋은 지표다. 지난해 11월 컴퓨터칩의 판매량은 2000년에 비해 42% 감소했다. 그러나 美 반도체산업연합회는 테러로 인한 판매감소가 1%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테러사태 후 며칠동안 미국 경제 전체가 작동을 멈추었지만, 실제로 피해를 입은 곳은 일부에 국한돼 있으며 그것도 일시적이었다. 직격탄을 맞은 항공사와 비행기 제조사는 커다란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다른 산업 분야는 금방 회복됐다. 오리건州의 자동차 산업 분석가 아트 스피넬라는 자동차 판매량이 9월말 바닥을 쳤지만, 10월부터는 다시 급속히 증가해 9·11 테러 이전 수준으로 돌아왔다고 설명했다. 테러 직후 소비자들은 지갑을 완전히 닫았지만, 얼마후 소비는 할인점을 중심으로 회복됐다. WSL 스트래티직 리테일社의 웬디 리브먼 사장은 소비 지출이 9·11 이전 수준으로 회복됐다고 말했다.

경제전문가들은 경기회복의 형태에 대해서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번 경기침체의 본질은 20세기의 경기침체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경기곡선이 어떤 모양을 그리면서 회복될지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다. V자 형태일까, U자 형태일까? 욕조 모양일까, 접시 모양일까? 아니면 앨런 그린스펀 FRB 의장의 경고처럼 침체기가 2번 있는 W자 형태일까? 경기회복이 이전보다 더딜 것이라는 추측은 설득력이 높다. 테러 후 소비자들이 지출을 자제했던 기간은 길지 않기 때문에 경기회복의 연료가 될 저축액은 많지 않다.

그리고 기업은 인터넷 하드웨어로 번 돈을 마구 썼기 때문에 다시 경쟁력을 갖추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1982년 경기침체 때 생산은 9개월만에 회복됐다. 그러나 美 제조업협회의 제리 재시노스키 회장은 이번에는 제조업이 회복되려면 2년은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러 경제전문가들은 올 4·4분기에 가면 경제성장률이 4%는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반면 전후 회복기의 경제성장률은 그 2배였다.

더 넓은 관점에서 볼 때도 이같은 제한적인 미국경기 전망이 잘 들어맞는다. UBS 워버그 증권의 글로벌 경제전문가 폴 도너번은 9·11 테러가 단발성 쇼크로 세계적인 인플레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USB는 13세기 영국으로부터 일정한 인플레 추세가 이어졌다고 본다. 지난 40년간 이 추세를 벗어나 있었는데 9·11 테러는 그 이탈에 종지부를 찍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1960년대 베트남 전쟁과 사회복지 프로그램에 대한 지출로 인플레가 확대됐고 유가 파동으로 인플레는 더 가속화됐다. 1980년대 레이건 혁명이 촉발한 세계적인 가격경쟁으로 물가가 내리면서 인플레가 둔화되기 시작했다. 9·11 테러로 이같은 추세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며, 낙관주의가 위축되겠지만 그것은 서서히 나타날 것이라는 주장이다.

세계화의 속도는 9월 11일 이전부터 경기침체로 인해 둔화되고 있었으며 그 후 좀더 두드러졌다. 2000년 최고 1조3천억달러에 달했던 외국인 직접투자는 지난해 절반으로 줄었지만 9월 11일 이전에도 40%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었다. 세계무역기구(WTO)는 2000년 12%에 달했던 교역증가율이 2001년에는 2%로 둔화될 것으로 추산했다가 테러 공격 후 다시 1%로 낮췄다. 모건 스탠리의 수석 경제전문가 스티븐 로치는 해운·보험 등의 비용증가에 의한 추가부담을 감안할 때 9·11 테러는 “글로벌 통상의 톱니바퀴에 모래를 뿌린 것”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9·11 테러의 잔해는 곧 세계화의 물결에 씻겨나갈 것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지는 것 같다. 기업들은 국내에서 가격을 올릴 수 없으면 가장 싼 곳에서 물자를 조달하려 한다. 그리고 미국을 제외한 다른 지역의 물가는 달러 강세 등의 요인 때문에 낮은 수준을 유지한다.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社가 지난해 11월 미국 다국적기업 1백71개사의 중역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올해 27%가 해외 사업확장을 계획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9월 11일의 테러공격 이전에는 19%에 불과했다. A.T. 키어니社가 9월 11일 이후 세계 1천개 대기업 중역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3분의 2가 해외투자를 축소할 의향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낙관론의 위축은 新경제 논쟁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느껴질 것이다. 디지털 기술이 영구적으로 성장을 계속할 수 있을까. 그 답은 현재 제한적인 ‘예스’다. 그러나 그 답변을 제한하는 것은 테러라기보다는 새로운 데이터라고 하버드大의 경제학자 데일 조겐슨은 주장한다.

1990년대말의 미국 생산성 증가율 추정치는 3%에서 최근 2.36%로 수정됐다. 좋은 소식은 생산성이 여전히 향상되고 있으며 전후 경기침체 기간중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생산성이 경제성장의 열쇠이기 때문에 대다수 경제전문가들은 미국경제가 이제는 과열되지 않고 약 3%의 성장을 구가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한다. 그것은 90년대말의 新경제보다 훨씬 둔화된 것이지만 1973∼1995년의 연평균 성장률 2.5%보다는 여전히 높다.

더욱이 브루킹스 연구소의 로버트 리튼과 캘리포니아大(버클리)의 핼 배리언이 발표할 예정인 연구에 따르면 기업의 인터넷 활용이 확산·발전하면서 향후 10년간 연간 생산성 증가율이 0.4%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널리 확산돼 있는 낙관론은 9·11 사태가 글로벌 비즈니스 네트워크스社 최고경영자 피터 슈워츠의 말마따나 ‘단발성 공포’였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1990년대의 미국을 묘사하는 ‘장기호황’(Long Boom)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미래학자 슈워츠는 전쟁이 확산되고, 폭력사태가 가열되거나, 혼란이 성장을 저해할 위험성은 상존한다고 경고한다.

이번주 뉴욕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에서는 우리 시대의 ‘취약성’에 대한 대처방안이 검토되며 이 문제에 대한 전문가들이 다수 참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들은 미국경제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을 것이다. 절제된 낙관주의 속에 경제가 살아나고 더 냉철해진 시장으로 투자자들이 다시 몰리는 상황에서 우리가 두려워 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가 아니다. 그것은 제2의 공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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