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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중동에서 잃어버린 1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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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요슈카 피셔
전 독일 외무장관

10년 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상대로 일으킨 이라크 전쟁은 중동의 정치 지형을 급격히 바꿔놓았다. 우선, 이라크가 불안정해졌다. 단일 국가로서 생존할 수 있느냐가 과거 어느 때보다 의심스러워졌다. 주류 시아파는 참혹한 내전을 통해 권력을 장악했다. 여기서 패배한 소수 수니파는 복수를 노리면서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 북부의 쿠르드족은 이 기회를 틈타 사실상의 독립을 쟁취했다. 그리고 모두가 이 나라의 막대한 석유와 가스 자원을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싸우고 있다.

 정치적으로 볼 때 이 전쟁의 최대 승자는 이란이다. 최대의 적인 후세인이 제2의 적인 미국에 의해 축출됐다. 덕분에 이란으로서는 1746년 이래 처음으로 서부 국경 너머로 영향력을 확대할 황금 같은 기회를 얻었다.

 전략적 전망도 부실하고 계획도 잘못됐던 부시의 전쟁 탓에 중동에서 이란의 위치는 자력으로는 상상할 수 없었던 규모로 높아졌다. 이란은 페르시아만을 포함하는 넓은 지역의 지배적 파워라고 스스로 주장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핵무기 프로그램은 확실하게 이 같은 야망에 기여했다.

 이라크전과 관련한 이 지역의 패배자 또한 분명하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걸프 연안 국가다. 이 나라들은 존재에 대한 위협을 느끼고 있으며 자국 내 소수 시아파를 제5열로 간주하게 됐다. 이 같은 불안감에는 일리가 있다. 이라크에서 시아파가 권력을 장악하자 이란은 자국 내 시아파를 대리인으로 삼아 중동의 헤게모니를 주장할 기회를 노리기에 좋은 위치가 됐다. 바레인의 국내 혼란에 기름을 붓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다수파인 시아파의 국지적 불만을 넘어서서 말이다.

 미국의 이라크전은 거짓말·허구·도덕성에 대한 의문, 부시의 개인적 책임으로 점철돼 있다. 이를 차치하더라도 미국은 결정적 실수를 했다. 중동에 ‘팍스 아메리카나(미국 주도의 평화)’를 강요할 수 있는 현실적 계획도, 힘도 없었다는 점이다. 기존 질서를 뒤흔들 만한 파워는 있었지만 새로운 질서를 만들 만한 파워는 없었다. 미국 네오콘들은 희망적 사고에 사로잡힌 나머지 당면한 과제의 규모를 과소평가했다.

 이라크전은 또한 미국이 상대적으로 몰락하는 시발점이 됐다. 부시는 이데올로기적 허구를 위해 미국 군사력의 대부분을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탕진했다. 그로부터 10년 뒤 이 지역에서 크게 부족한 것이 바로 이 힘이다. 그리고 미국 외에는 대안이 될 가능성이 있는 힘이 없다.

 이라크전과 2010년 10월 시작된 아랍 혁명에는 인과관계가 없다. 하지만 양자가 시사하는 바는 악의적으로 결합됐다. 과거 알카에다를 비롯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과 수니파 아랍민족주의 그룹은 서로 커다란 적대감이 있었는데 이제는 서로 협력하고 심지어 통합까지 하게 됐다. 이 또한 미국 네오콘이 초래한 결과다.

 아랍 혁명으로 인한 지역의 불안정은 주로 시리아와 이란을 통해 점점 이라크로 집중되고 있다. 오늘날 중동의 가장 큰 위험은 시리아의 내전에서 번져 나오는 ‘국가 해체’ 과정이다. 이는 이라크뿐 아니라 레바논과 요르단으로 퍼져나갈 위험이 크다.

 시리아의 내전이 위험한 이유는 내부 세력 간의 다툼을 벗어나 중동 지역의 지배력을 둘러싼 투쟁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 한쪽에는 이란이 있고 그 반대쪽에는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터키가 대항하고 있다. 그 결과 중동은 21세기의 발칸이 될 위험을 안게 됐다. 중동의 이 같은 혼란은 10년 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서 시작됐으며 대체로 그 결과이기도 하다. ⓒProject Syndicate

요슈카 피셔 전 독일 외무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