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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자 최초의 단독 종군기|「메콩·델타」의 전화를 뚫고|【「탄푸」지역에서 본사 장두성·윤정규 특파원 제1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67년도의 월남전은 북으로의 「에스컬레이션」(확전)과 더불어 남쪽의 곡창지대「메콩·델타」에 대한 「에스켈레이션」으로 그 판가름이 날 것이다. 거미줄 같이 얽힌 수로, 하늘을 덮는「정글」, 허리까지 빠지는 늪지대, 득실거리는 해충, 이 모든 것이「베트콩」의 서식지로서는 안성맞춤이다. 지상전에 자신을 얻은 미군은 모든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이「최후전선」의 확보를 금년의 군사목표로 설정했음이 틀림없다. 이미 미 제25사단 병력 일부가 「델타」지역에 투입되었고 속속 상륙하는 9사단 병력 그리고 이 지역에 연합군도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미·월 군은 연말과 연초 4일간 이미 이 지역에 대한 첫 투입작전을 감행했다. 한국 특파원으로서는 처음으로 이 작전에 종군한 본사 특파원을 통해 그 생생한 모습을 살펴보자.
「빈롱」기지를 떠난 3O대의 「헬리콥터」가 삼각주 최남단에 위치한 「탄푸」지방으로 향했을 때 수로와 논과 「정글」이 얽혀진 삼각주에는 아직 새벽의 어스름이 서려있다.
전투지역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지극히 평화스러운 풍경이다.
마치 그런 생각을 윽박지르듯 선두에서 방향을 인도하던 지휘「헬리콥터」가 급격히 2천8백 「피트」로 고도를 높인다.
기자가 탄 둘째 번 「헬리콥터」도 따라서 고도를 높이고 양편 사수들도 기관총을 잡아 아래로 겨냥한다.
「목적지까지 5분」이라고 사수가 일러준다. 약 4「킬로」전방에서 「로케트」를 장전한 공격용 「헬리콥터」(건·쉽)들이 착륙 예정지역에 공격을 가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착륙시간은 7시35분. 확보된 착륙지점이 아니기 때문에 지상1「미터」에서 병사들은 뛰어 내렸다. 제1진과 함께 내린 기자는 병사들을 따라 무릎 위까지 빠지는 논을 가로질러 은폐물이 있는 전방 2백「미터」의 숲을 향해서 전진했다.
첫 목표인 「지옹 칵」마을에 도착한 것이 8시 50분-. 병사들은 산개 하여 집을 뒤지기 시작했다. 첫집에 들어갔을 때 마루 위에 백발의 노파와 며느리인 듯한 여인이 웅크리고 앉아있다. 이들을 심문한 결과 약 2백명의 「베트콩」 무장병들이 우리가 착륙하던 시간에 「함투옹」(메콩의 지류) 강을 건너 도망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부근을 뒤지던 병사들이 방공호 속에서「베트콩」기와 지령문 및 변절을 종용하는 대 정부군 선전전단을 많이 찾아내었다.
이 지역의 주민들은 오랫동안 「베트콩」의 치하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베트콩」의 해방전선을 자기들의 진정한 정부로 받아들이고 정부군을 적으로 대하고 있는 듯 싶다.
3시간 동안의 소탕전이 끝나고 2「킬로」 남방에 착륙한 제 2진과 합류한 것은 11시-. 그때까지의 전과는 사살 11명, 용의자 15명을 체포. 지뢰 2개, 수류탄 5개의 노획뿐이었다. 「베트콩」정부분자들은 놓치고 마을에 남아있던 지방「게릴라」만을 상대로 싸웠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났다.
매주 3회씩 대소규모의 작전에 수행해 왔다는 고문관 「보윈」 소령은 이곳 작전이 늘 이런 식으로 끝나버린다고 했다. 아직까지 한번도 강력한 저항을 받아본 적은 없으나 그렇다고 해서「베트콩」지역 깊숙이 있는 이곳에 야영을 하기는 위험하기 때문에 하오 3시만 되면 그대로 기지로 돌아가 버린다는 것이다.
이 작전에 처음부터 공중지원을 해준 「헬리콥터」의 조종사「윌리엄즈」준위는 『위험지구에서 야영을 하면서 적을 유인-. 이들과 대항할 만큼 강한 군대』가 이곳에 오지 않으면 도저히 효과적인 전투를 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한 군대가 한국군 미군 호주군이라면서 언제쯤 이들이 투입되느냐고 기자에게 물어왔다.
어떤 군대가 작전을 실시하든 간에 이곳 전투의 명분은 『민중을 「베트콩」으로부터 구출한다』는데 있는 것이기 때문에 주민의 적대적 태도와 또 민가를 노획대상물로 착각하는 듯한 병사들의 태도가 어떤 형태로라도 호전되지 않는다면 「델타」의 전쟁은 무서운 시련을 겪게 될 것이라는 것이 이번 종군의 솔직한 소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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