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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들 카메라 돌자 긴장…인터넷선 실시간 댓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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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사법 사상 최초로 대법원 전원재판부 공개 변론이 21일 TV·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됐다. 양승태 대법원장(왼쪽 다섯째)이 대법정에 설치된 생중계 방송카메라 앞에서 국외이송약취 혐의로 기소된 베트남 여성 A씨의 재판 개정을 선언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21일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대법원의 대법정에 13명의 대법관이 입장했다. 동시에 중앙과 좌우, 뒤쪽 크레인에 달린 것까지 4대의 카메라가 돌기 시작했다. 자리에 앉은 대법관들의 얼굴엔 약간의 긴장감이 스쳤다. 65년 한국 사법 역사상 처음으로 대법원의 빗장을 열고 재판 생중계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재판 생중계는 국민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양승태 대법원장의 ‘열린법원 실험’의 일환이다. 이를 위해 ‘재판 시작 전까지만 촬영·녹화를 허용한다’는 기존 대법원 재판예규까지 최근 고쳤다.

 이날 심리 대상은 베트남 여성 A씨(25) 사건이었다. A씨 혐의의 요지는 부부싸움 끝에 13개월 된 아기를 데리고 친정으로 가버린 것이다. 아빠 몰래 아이를 외국으로 빼돌렸다며 형법상 미성년자 약취와 국제이송약취죄가 적용됐다. 하지만 1·2심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재판을 시작하기 전 “다문화가정이 많아진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 볼 문제”라고 설명했다.

 재판은 검찰과 변호인 측 모두 변론을 시작으로 양측 참고인의 의견 진술, 대법관들의 질문과 답변, 최후변론이 이어졌다. 첫 진술엔 7분, 최후변론에는 5분이라는 시간제한이 주어진 점을 빼곤 평소 재판과 같았다.

 양측의 변론 스타일은 판이하게 달랐다. 검찰에선 대검의 이건리 공판송무부장(검사장)이 직접 나섰다. 그는 준비된 원고를 또렷한 목소리로 읽어내려갔다. 준비를 많이 한 듯 시간도 정확했다. 그는 “이혼 과정에서 양측이 양육책임에 대해 합의하거나 법원의 판단을 구할 수 있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아이를 외국으로 데려가 아버지의 양육권을 침해했다”며 원심의 무죄 판단이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대한변협 인권위원장을 역임한 김용직 변호사는 차분한 대화 방식을 택했다. 그는 준비한 24장짜리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제쳐두고 “엄마에게 자기 아이를 유괴했다는 죄를 물을 수 있는가, 13개월 된 아이에게는 엄마가 꼭 있어야 하는 만큼 아이의 이익도 침해되지 않았다”고 무죄를 주장했다.

 숙명여대 법학과 곽민희 교수는 검찰 측 논리를, 한양대 로스쿨 오영근 교수는 변호인 측 논리를 각각 보충 설명했다.

 이어진 대법관들의 질문은 날카로웠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거꾸로 우리 국민이 외국서 낳은 아이를 배우자 동의 없이 한국에 데리고 온 사례가 있는가”라고 물었다. 주심인 박보영 대법관과 양창수·신영철·김소영·김용덕 대법관의 질문도 이어졌다. 곤란해 보이는 질문도 있었지만 양측 모두 한 치의 양보 없이 자기 논리를 폈다. 재판을 마친 김용직 변호사는 “시간 제한 때문에 힘들었지만 이런 과정을 거쳐 판결이 나온다는 것을 국민과 공유하는 자리가 된 것 같아 좋았다”고 말했다.

 법정 밖의 호응도 좋았다. 이날 KTV·YTN과 함께 인터넷 생중계를 한 네이버 중계창에는 재판이 진행되는 도중에만 285개의 댓글이 올라왔다. “엄마가 아이를 인질로 삼은 것은 아니니 무죄 같다”(아이디 x201****)는 의견과 “아이가 한국인으로 누릴 권리를 엄마가 빼앗았다”(limd****)는 의견이 맞섰다. 재판 도중 대법관들이 서류를 보며 숙고하는 모습이 화면에 잡히자 즉각 “조는 것 아니냐”는 댓글이 뜨기도 했다.

 TV로 재판을 지켜본 오욱환 전 서울변호사회 회장은 “하나의 결론을 내리기 위해 문제의 근본까지 파고들어 해결하려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기회가 됐다” 고 말했다. 대법원 윤성식 대변인은 “대법원에서 몇 차례 시행해본 뒤 국민적 관심을 끄는 하급심에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글=최현철·박민제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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