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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표정] 4. 히말라야 라다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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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라다크는 '작은 티베트'라 불릴 만큼 티베트의 불교 문화가 잘 보존돼 있는 보석같은 곳이다. 히말라야 고원의 황량한 자연에 순응하며 고유의 문화를 건강하게 지켜가는 이 토착 공동체의 삶은 헬레나 노르베리-호지가 쓴 '오래된 미래'에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분장을 한 '라마조기'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부엌에서 새해를 축복하고 나쁜 귀신이 들지 않도록 빌어준다.

라다크의 사람들에게 부엌은 생활을 꾸려가는 중심이다.

일년 중 겨울이 여덟달 이상이기 때문에 따뜻한 화덕이 있는 부엌은 거실이자 침실이 되기도 한다. 진흙으로 만든 화덕은 아궁이 하나에 솥과 냄비 등을 얹을 구멍이 여러 개 뚫려 있는데, 음식을 만드느라 달구어진 화덕은 자연스레 난방기구 구실을 한다.

영하 30도 이하로 내려가는 긴 겨울, 나무가 살기 힘든 라다크 땅의 특성 때문에 이곳 사람들은 가축의 똥을 말려 연료로 쓴다.

라다크 사람들이 해마다 처음 거둔 곡식 '풋'을 부엌 기둥에 묶어 두는 까닭은 이렇듯 부엌이 소중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새해를 맞는 축원 행사도 부엌이 무대가 된다. 집안의 수호신인 '킴라'에게 한 해의 평온과 축복을 비는 굿판인 '로사르'를 기둥과 화덕과 술 항아리가 있는 부엌에서 연다.


1년의 반 이상이 겨울인 라다크에서 부엌은 식구들이 즐겨 모이는 중심 공간이다. 밤이면 화덕 온기에 의지해 잠을 잔다.

'로사르'는 두 가지 뜻을 지녔다. 하나는 새해이고, 다른 하나는 악귀들을 쫓아내고 새해를 축하하는 마을굿이다. '로사르'를 이끄는 신을 '라마조기'라 부르는데 마을 사람들이 해마다 돌아가며 이 역할을 맡는다.

그 해의 '라마조기'로 결정된 이는 우선 강가에서 목욕을 하고 특별한 옷을 입는다. 염소 뿔을 들고 야크의 꼬리털로 만든 가발을 쓴 뒤 얼굴에 하얀 미숫가루를 바르고 나면 그는 '라마조기'로 변신하게 된다.

그들은 '몬'이라고 부르는 악사들과 함께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부엌 기둥 언저리를 돌거나 화덕과 항아리 앞에서 부와 건강을 비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우리들의 풍파(항아리), 우리들은 금으로 채운다…안녕, 새해는 네게 더 많은 즐거움과 행복과 건강과 부를 가져다 줄 것이니, 다시 널 보기를 원한다, 안녕."

이런 축원을 받은 집주인은 '라마조기'에게 차와 막걸리와 떡을 대접한다. 라다크의 설 음식은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보리로 '창'이라는 막걸리를 담그고 한과같은 '쿠라'라는 과자, 아홉가지 재료를 넣어 만든 '구툭'이라는 수제비 비슷한 음식을 준비한다. '로사르'를 즐기는 것이 라다크의 새해 맞이다.

김수남 <경상대 인문학연구소 특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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