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고정애의 시시각각

대통령 앞에 결재판 쌓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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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고정애
논설위원

‘관료의 나라’가 된 요즘 자꾸 떠오르는 말이 있다. “언제 대통령의 어깨가 가장 처져 보이냐”고 묻자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관(史官)격 참모가 했다는 답변이다. “대통령에게 ‘결정해 달라’고 할 때다. 장관이 책임지고 할 수 있는 것도 말이다.”

 청와대 고위직을 지낸 인사도 비슷한 말을 했다. “복지부 사무관이 결정할 일이 국장·차관·장관을 거쳐 나한테까지 결재해 달라고 오더라.” 그만은, 또 그 일만큼은 대통령에게 넘기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이같이 말했다. “4대 강 사업 때 우리 지지자도 반대하는 진짜 이유에 대해선 정작 보고하지 않았다. 알았더라면 얼마든 대처할 수 있었는데….”

 직전 정부만의 일이면 얼마나 좋으랴. 고질(痼疾)이다. 노무현 대통령 때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국민대 김병준 교수가 『99%를 위한 대통령은 없다』에서 13쪽에 걸쳐 다룬 경험담은 기가 찰 정도다. 그중엔 이런 게 있다. 대통령 어젠다 사업 관할권을 두고 경제부총리까지 두 손 들 정도로 부처들이 극심하게 갈등할 때였다. 결국 청와대가 개입했는데 한 차관보가 이런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 “6개월 동안 다른 부처의 활동을 모니터하고 그에 대비한 작전을 짜느라 시간을 보냈다. ‘저쪽 부처 동향이 어떠냐? 협회를 만들었어? 그러면 우리도 빨리 사람 모아 협회 만들어’ ‘○○부가 청와대 누구한테 전화했다는데 우리도 누구를 찾아가야지’. 집에 가서까지 이런 전화를 주고받으니 아내가 이러더라. ‘당신들 국록을 받고 사는 게 부끄럽지 않으냐.’”

 김 교수에게 요즘의 관료 중용에 대해 물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경험한 관료의 세계는 박정희 대통령 마지막 시기로 그땐 관료에 대한 (대통령의) 통제권이 완벽했을 때다. 지금은 안 된다”고 했다. 관료 조직과 외부의 이해관계자, 고객집단까지 포함한 관료 커뮤니티의 힘이 대통령보다 세다는 거다.

 -그렇다면 인선된 사람들은 어떤가.

 “대단히 양순한 사람들을 많이 썼더라. 초창기엔 실수 안 하겠다는 건데 우리 사회가 실수만 안 해서 되는 사회가 아닌데. 관료는 평생 책임을 어떻게 회피하느냐를 배운다. 과감한 관료도 있다. 그러나 일찍 도태된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청와대로 일이 몰리겠다.

 “내가 이해하기론 정무직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책임을 지는 거다. 때가 되면 방패가 되고 또 옷 벗고 나가는 거다. 그러나 책임은 안 지고 계속 청와대에 전화를 해댄다. 청와대 비서관이라도 뭔가 얘기해주길 기대하고 그런 게 없으면 중요한 결정을 안 한다.”

 그는 얘기 안 했지만 청와대 비서관도 수시로 파견 부처의 대변자가 된다. 검·경 수사권 조정 때 민정비서관과 치안비서관은 그저 검찰·경찰이었다.

 사실 박 대통령은 오랜만에 관료친화적이다. DJ와 노무현 전 대통령은 관료 개혁을 실행했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관료에 대해 생래적 거부감을 가졌다. 관료 사회에선 지난해 대선 직후 “호시절이 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래도 내각은 물론 청와대까지 장악한 건 기대 이상일 거다.

 관료들이 박 대통령의 후의에 보답할까? 진정 그러길 바란다. 구습에서 벗어나 ‘관료에 의한 개혁’이란 형용모순적 변화를 만들어내길 바란다.

 하지만 꺼림칙한 게 있다. 18일 박 대통령이 회의장에 들어서자 거의 모든 수석이 기립해 깊숙이 허리 숙였던 때의 일을 듣고서다. 박 대통령 등장 전부터 수석들은 허리를 곧추 세운 채 말없이 앉아있었다고 한다. 너무 어색해 한 수석이 일어나 “우리끼리 너무 조용한 거 아니에요”라고 돌다가 더 어색해져 자리로 되돌아갔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걸 본 인사는 “수습(사원)도 저러진 않겠다 싶더라”고 했다.

 그런 분위기라면 청와대로 향하는 결재판이 도중에 걸러지지 않고 다 대통령 앞에 놓이는 게 아닌가 싶다. 박 대통령의 의지와 체력이 지속되기만 바랄 뿐이다.

고정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