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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리터 1600원 ‘착한 기름’ 넣을 수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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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일반 주유소보다 20%가량 값이 싼 이른바 ‘착한 기름’이 등장할 수 있을까?

 ‘국민석유회사(이하 국민석유)’ 설립준비위원회는 21일 지역 대표와 준비위원 500여 명이 모여 창립발기인대회를 연다. 이태복 상임대표는 “상반기 중 전국 50여 개 주유소에서 L당 200원가량 저렴한 기름을 판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향후 5000억원의 자본금을 모아 정제시설을 갖추면 기름값을 20%까지 내릴 수 있다는 게 국민석유 측의 구상이다. 이 대표는 “인터넷 청약을 통해 20일까지 3만3800여 명이 1062억원을 약정한 상태”라며 “국민석유가 주도하면 기존 정유사도 기름값을 내릴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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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정유업계는 비관적으로 전망한다. 자본금 5000억원으로 정유공장을 짓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다. 일부 업체는 “국민 현혹”이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한때 정유시장에서 화제가 됐던 ‘값싼 기름’은 수입산 석유와 유사 휘발유 판정을 받았던 세녹스 등이 있다. 지금은 모두 좌초한 상태다.

 1997년 석유산업 규제가 풀리면서 석유 수입업체 1호인 타이거오일이 설립됐다. 이 회사는 당시 국내의 절반 가격인 일본·대만·싱가포르 등에서 석유 완제품을 들여와 정유 4사보다 10∼20% 싸게 판매했다. 이후 동특·이지석유·바울석유 등 80여 곳으로 수입사가 늘어나면서 시장점유율이 10%에 이르기도 했다. 하지만 수입 관세가 5%에서 7%로 오르는 ‘세금 폭탄’을 맞고 국제 유가가 뛰면서 대부분 문을 닫았다.

 중소기업인 프리플라이트가 2002년부터 판매한 세녹스는 업계의 핫이슈였다. 메틸알코올과 솔벤트·톨루엔 등을 섞어 만든 세녹스는 휘발유보다 L당 300∼400원가량 저렴해 시장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전국 대리점 70여 곳에서 유통됐는데 오전에 판매가 모두 마감되는 기록을 세울 정도였다. 하지만 유사 석유·탈세 논란을 겪은 끝에 2006년 대법원에서 ‘불법 석유’ 판정을 받고 퇴출됐다.

 이태복 대표는 그러나 “국민석유는 이전과는 다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값싼 저유황 원유 도입 ▶국산 첨가제 사용 ▶건설비용 절감 등을 통해 제조원가를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석유 측의 구상과 정유업계의 반박을 들어봤다.

 ①두바이보다 값싼 원유 들여올 수 있나

“캐나다와 시베리아 등에서 값싼 저유황 원유를 도입해 원가를 낮출 수 있다. 미국 서부텍사스유(WTI)와 가격이 연동되는 캐나다산 원유는 두바이유보다 15% 가까이 싸다. 캐나다는 중국과 일본·한국 등 주요 수입국이 있는 태평양 쪽으로 수송관을 개설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국민석유) vs “새로운 수요가 발생하면 시장가격도 재편성되기 마련이다. 캐나다산 원유가 아시아로 공급된다면 두바이유 값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또 캐나다가 수출 시설을 만들면 당연히 정유 4사도 참여할 것이다.”(정유업계)

 ②촉매제 국산화로 원가 낮춘다

“원유를 정제해 휘발유·경유 등을 뽑아내는 과정에서 400여 개의 촉매제가 쓰인다. 촉매제를 국산화해 제조원가를 낮출 수 있다. 중국도 5∼6년 전부터 자체 개발한 촉매제를 쓰고 있다. 하지만 국내 정유사는 원유 메이저 제품만 고집하고 있다.”(국민석유) vs “24시간 365일 가동되는 공정 특성상 안정성이 가장 중요하다. 현재 정유사에서 사용 중인 촉매제는 공정에 따라 수년에 걸쳐 최적화한 다음 맞춤형으로 제작됐다. 국산화하는 과정도 쉽지 않고 비용도 크게 낮아지지 않을 것이다. 특히 촉매제가 제조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1% 안팎에 불과해 비용절감 효과가 크지 않다.”(정유업계)

 ③자본금 5000억원으로 정유사 만들 수 있을까

“값싼 수입유를 들여와 상반기 50곳, 하반기 100곳의 주유소를 운영하면서 L당 200원 싼 기름을 선보일 것이다. 이후 자본금을 5000억원으로 늘려 정제시설을 갖출 계획이다. 정유공장을 짓는 데 거품이 많이 끼어 있다. 실제로 외국 회사가 제시한 건설비용은 그리 높지 않다. 공장을 짓기 위해 지방자치단체 3곳과 논의 중이다. 정부 지원을 받으면 가능하다.”(국민석유) vs “그 돈으로는 원유 운반선이 드나드는 부두와 저장탱크·정제공장 등이 들어설 부지도 구하기 힘들 것이다. 정부 지원에 기댄다는 것은 국영 정유회사를 만드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정유업계)

이상재·이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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