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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E] 층간 소음 갈등 줄일 수 없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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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강일구

층간 소음으로 미쳐버린 여자, 위층 소음 극복법….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층간 소음이라는 단어를 입력하면 연관 검색어로 이런 말들이 뜹니다. ‘층간 소음으로 미쳐버린 여자’를 클릭하면 한 여고생이 높은 책상에 올라가 국자 두 개로 난타 공연을 하듯 천장을 두드리는 동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소음에 시달리던 사람의 소심한 복수법이라고 웃어 넘기기엔 층간 소음 문제가 자못 심각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신문과 교과서는 얼마 전 이웃 살인으로까지 이어진 층간 소음 문제에 대해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찾아봤습니다.

정리=박형수 기자
일러스트=강일구

위쪽의 QR코드를 찍으면 층간 소음 모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볼 문제

“세상에, 저런 일로 이웃을 죽이나.”

 지난달 설날 연휴로 온 가족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 뜻밖의 뉴스가 우리 눈과 귀를 의심케 했습니다. 층간 소음으로 시비가 붙은 이웃 간의 다툼 끝에 아래층 살던 한 남자가 위층에 사는 형제를 살해한 사건이 벌어진 겁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살인을 저지른 가해자를 향해 손가락질했지요. 하지만 일부에서는 지속적인 층간 소음이 주는 정신적 피해를 지적하며 “(층간 소음에 대해) 사회적 차원의 근본적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을 단순히 인격 파탄자가 저지른 엽기행각으로 보기보다 아파트라는 주거환경이 낳은 비극적인 결과로 보는 시각인 셈이죠.

 실제로 기사(2013년 2월 14일자 14면)에서는 이웃을 흉기로 찌른 사건, 위층 주민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사건 등 층간 소음으로 인해 이웃 간 갈등이 줄을 잇고 있다고 꼬집고 있습니다. 해결 방법도 제시(2013년 2월 13일자 33면)합니다. 이 기사에서는 서로 다투기보다 먼저 이해하고 공동체 의식에 대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대안과 해결책

고등학교 정치 교과서에는 ‘미래 사회의 특징’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미래 사회는 개인의 인권과 자유가 더욱 보장되고 개성이 존중될 것이라 언급하고 있지요. 개인의 안락하고 편리한 생활, 행복 추구가 무엇보다 중요한 사회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생각의 근간에는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래 사회의 또 다른 특성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더욱 강조한다는 것입니다. 사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구성원이 지켜야 할 규범과 규율을 따라야만 개인으로서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층간 소음은 교과서에서 설명하는 미래 사회가 가진 두 가지 특징이 충돌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만합니다. 층간 소음이 발생하는 환경은 아파트, 즉 공동주택입니다. 공동체의 극단적인 예로 손색이 없지요. 이곳에 사는 사람은 개인으로서 안락하고 쾌적한 사생활을 보장받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아파트라는 공동체의 숙명에 의해 서로가 일으키는 소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개인주의를 지향하면서도 사회 공동체 구성원이 따라야 하는 삶의 양식을 추구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선 당연히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겠죠. 이런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사회 교과서에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사회 제도의 개선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 의식의 변화입니다.

 층간 소음은 도시 과밀화로 공동주택이 늘면서 벌어진 사회 문제임에도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노력은 매우 미흡했습니다. 기사(2013년 2월 14일자 14면)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층간 소음이 이웃 간 폭행으로 이어지거나 소송으로 비화되는 일이 비일비재했지만 소송을 맡은 재판부는 “생활소음 분쟁은 소송이나 환경분쟁조정위원회 등 제3자를 통한 해결보다 당사자나 공동주택 차원에서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만 고수했습니다.

그러나 교과서에서는 ‘구성원의 다양한 목소리와 절차를 존중하다 보면 문제 해결의 효율성은 떨어지고 공동체의 혼란이 가중돼 구성원 전체가 공멸하는 상황으로 치닫을 수 있다’며 합리적인 법과 제도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개인 의식 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강조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는 층간 소음으로 이웃이 갈등하는 내용의 소설 『소음공해』(오정희 씀)가 실려 있습니다. 주인공은 위층에서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오는 정체 모를 소음에 노이로제 걸릴 지경이 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슬리퍼를 사 들고 위층을 방문합니다. 문을 열어 준 사람은 휠체어를 타고 있는 장애우였죠. 알 수 없는 소음의 정체가 다름 아닌 휠체어 바퀴 소리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주인공은 사 온 슬리퍼를 감추고 맙니다. 이웃의 상황에 좀 더 관심을 갖고 배려하는 소통의 자세를 갖는다면 자잘한 일상에 날 선 반응을 보이는 일도 줄어들 것이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지요.

 한편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에는 ‘외부 효과’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외부 효과란 어떤 경제 주체의 행동이 제3자에게 의도하지 않은 혜택이나 손해를 가져다 주지만 이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거나 받지 않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러한 외부 효과는 제3자에게 혜택을 주는 긍정적 외부 효과(외부 경제)와 손해를 끼치는 부정적 외부 효과(외부 불경제)로 나눌 수 있습니다.

 층간 소음은 부정적 외부 효과에 해당하는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부정적 외부 효과를 해소하기 위해 경제적 유인책을 쓰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층간 소음 문제의 해법도 이런 방식으로 찾을 수 있습니다. 예컨대 위층·아래층 주민이 사전에 충분히 이해를 구해 서로 주의를 기울여야 할 시간대를 정하고, 그래도 불가피하게 소음이 발생하면 이웃 간에 음식을 나누거나 하는 등의 일정한 보상을 통해 해결하는 방법을 들 수 있습니다.

 이웃 간에 법 조항을 들먹이며 소송하는 것이나 공동체 정신을 강조하며 일방적인 이해를 구하는 것보다 이런 경제적인 해법이 합리적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이런 경제적 해결책이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주민 상호 간의 상황과 형편에 대한 충분한 소통이 선행돼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집필=명덕외고 김영민(국어), 한민석(사회), 오경진(물리)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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