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이스토리’보며 컴퓨터로 영화 만들겠다 꿈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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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테오도르 김 교수가 영화 ‘인크레더블’의 한 장면을 보며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처럼 하는 기술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서울대]

아카데미상을 받은 컴퓨터 공학자, 테오도르 김(34·김원용) 교수가 19일 오후 서울대 공대 강연장에 들어섰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UC샌타바버라) 미디어 아트&테크놀로지 프로그램 교수인 그는 지난달 열린 85회 아카데미 과학기술 시상식에서 기술혁신상을 수상했다. (본지 2월 14일자 28면) 나이 지긋한 영화기술인 사이에서 수상한 젊은 한국인은 현지에서도 눈길을 끌었다.

 이날 강단에 선 김 교수는 면바지와 티셔츠, 단발머리 차림. 100여 명의 학생들은 편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의 젊은 공학자를 박수로 맞았다. 그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영화 속 인물과 풍경에 생명을 입히는 기술을 설명할 때마다 경탄이 터져나왔다.

 김 교수는 아카데미를 거머쥔 기술인 ‘웨이블릿 터뷸런스(wavelet turbulence)’를 생생히 재현해냈다. 한국말로 ‘잔물결 난류’쯤으로 번역되는 이 기술은 수백만 개의 입자를 조작해 진짜 불이나 연기처럼 정밀하게 구현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영화 ‘아바타’에서 판도라 행성의 울창한 숲에 폭탄이 떨어져 불구덩이가 되는 장면도 이 기술로 만들어졌다.

 김 교수는 2008년 이 기술을 논문으로 낸 뒤 바로 대중에게 공개했다. 돈을 벌 수도 있는 기회를 그는 과감히 던졌다. 그는 강연에서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이 이 기술로 멋진 영화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공개했다”고 했다. 다른 연구자가 같은 기술에 대한 논문을 거의 동시에 펴냈지만 김 교수의 기술만 할리우드 영화에 쓰인 것도 이 때문이다.

 2009년부터 스크린에 등장하기 시작한 그의 기술은 이미 할리우드 액션·SF 영화 26편에 이용됐다. ‘트랜스포머 2’ ‘셜록 홈즈’ ‘수퍼 8’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이다. 올해 들어서도 ‘아이언맨 3’ ‘맨 오브 스틸’ 등에서 그의 기술이 쓰였다. 아카데미 측은 “이 기술이 영화 제작 속도와 묘사의 정밀성을 향상시켰다”고 평했다. 이전까지는 화염·연기의 정밀 묘사에 몇 주가 걸렸지만, 이 기술로는 몇 시간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가 영화 제작사로부터 받은 돈은 ‘0달러’. 무료로 논문을 공개했고 영화 제작에는 참여하지 않아서다. 김 교수는 “그래도 교수직을 얻거나 연구비를 받는 데는 도움이 된다”며 웃었다.

 강연 뒤 기자와 만난 김 교수는 “미 해군 연구소에 재직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연스레 공학에 관심을 가졌다”고 말했다. 아버지 김윤호(68)씨도 아들과 함께 강연장을 찾았다. 그는 “아들이 그림도 곧잘 그리고, 교회에서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는 예술적 감수성도 지녔는데 IBM 컴퓨터가 나오자마자 사달라 조르고 이후 컴퓨터를 끼고 살았다”고 말했다.

 김 교수가 영화와 인연을 맺은 건 1995년 애니메이션 영화 ‘토이스토리’를 보고서다. “컴퓨터로 이렇게 긴 영화를 재미있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영화를 만들겠다는 꿈을 꾸게 됐다”고 했다. 수학에 흥미가 없던 그가 수학을 언어처럼 쓰는 컴퓨터 과학을 대학 전공으로 선택한 이유다.

 코넬대·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학사·박사 과정을 거친 김 교수는 2008년 동료 3명과 논문을 내놓았다. 2011년부터 UC샌타바버라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다. 그는 “연기·화염 등 기체에 쓰이는 기술을 파도와 쓰나미 등 액체를 구현하는 수준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라며 “한국 영화인들이 요청하면 얼마든지 협업할 용의도 있다”고 말했다.

이정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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