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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내가 졌구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이집 저집, 골목마다 개가 많은 동네다. 아이도 아직 없으니 적적한데 강아지 한 마리만 기르자고 오래 전부터 그이는 얘기해오지만, 나의 반대로 그이의 작은 소원은 번번이 꺾여왔었다. 주인을 알아보고, 집을 지켜주고…생각해보면 고맙고 귀여운 동물이지만, 신경질적으로 개를 싫어하는 내 성미인지라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한번 크게 놀랐다. 옆집 노랭이와 그이가 나 모르는 사이에 친해져 있음을 눈치 챘기 때문이다. 그제 서야 멸치 대가리가 몽땅 달아나 버린 까닭을 알 수 있었다.
지난 토요일 오후 시장에서 돌아와 보니 그이는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마루 끝에 앉아 대가리가 없어진 멸치를 한 움큼 쥐고 옆집 노랭이와 사귀고있지 않은가.
내가 돌아온 기척을 알자, 어린애처럼 무안해지는 그이. 으례 쫓을 줄 알고 꼬리를 뒷다리 사이에 끼워 넣고 슬금슬금 도망치는 노랭이.
나는 문득 쫓기는 노랭이보다 그이가 더 측은하게 어겨졌다. 별수 없이 싫어도 내 고집을 내 스스로가 꺾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여보, 우리도 강아지를 길러요』내가 말하자 어린애처럼 좋아하는 그이의 환성을 들으며 나는 중얼거렸다.
『또 내가졌구나!』

<노경애·부산시 부산로구혁읍동440 2통2반·이은규씨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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