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0년 상품으로 등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크리스머스」가 눈앞에 다가섰다. 상가의「쇼·윈도」에는「크리스머스·카드」가 진열되고 「징글벨」의 흥겨운 가락은 거리에서 거리로 퍼져가고 있다. 남의 것으로만 여겨져 오던「크리스머스」가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우리에게도 하나의 명절이 되어버렸고「크리스머스·카드」를 주고받는 풍습도 이젠 우리에게 익숙해진 것 같다.
「크리스머스·카드」의 유래를 더듬어보면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다.
「크리스머스·카드」를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은 1843년 영국의「헨리·콜」경이라고 전한다.
「빅토리어·알버트」박물관의 창설자인「콜」경은「크리스머스」때마다 친지들에게 편지 쓰는 습관이 있었는데 1843년「크리스머스」때는 편지 쓰는 것을 너무 미루다 그만 시기가 임박하자 인쇄해서 보내려고 작정,「제이·시·호스리」라는 화가에게「카드」의 도안을 의뢰했다는 것.
「콜·호스리·카드」로 알려진 이 최초의 「크리스머스·카드」에는 객지에 가있는 사람의 건강을 빌며 술잔을 드는 가족의「파티」장면이 그려져 있었다.
약5·1×3.25「인치」크기의 마분지에 석판으로 인쇄된 이「카드」는 당시 영국에서 음주를 조장하는 그림을 그렸다고 말썽이 되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1850년대부터 「크리스머스·카드」가 나돌았으나 상품으로 대량 생산된 것은 l860년대부터라고 한다.
당시「보스턴」에서「크리스머스·카드」를 만든「루이스·프랑」은 미국「크리스머스·카드」의 원조라고 불릴 만큼 큰 성공을 거두었다.
「크리스머스·카드」는 해를 거듭할수록 불어나고 있다. 체신부는 지난해 1천7백53만8천9백12장의「카드」를 배달했고 76만2천2백36장을 해외로 보냈다. 이것을 돈으로 따지면 약6억 원(우편료 포함)이 된다.
올「크리스머스」에는 월남·서독 등지로 보내질「카드」가 부쩍 늘 것으로서 약2천만 장이 팔릴 것으로 업자들은 내다보고 벌써부터 판매경쟁이 치열하다.
미국에서는 해마다 1백50억 장의「크리스머스·카드」를 국내 3백여 개의 업자들이 만들어 내고 있는데 여기에 소비되는 돈이 자그마치 8억2천5백만「달러」(원화2천2백43억 원) 나 되어 우리 정부의 한해 예산의 곱절이나 된다는 것.
영국에서도 올해에 약7억 장의「크리스머스·카드」가 팔릴 것으로「더·타임즈」지는 내다보았다.
이것을 돈으로 셈하면 약2천5백만「파운드」, 여기다 8백만「파운드」가까운 우편요금까지 보태보면 실로3천3백만「파운드」(원화2백50억4천7백만 원)가「크리스머스·카드」에 쓰여지는 셈-. 올해 우리나라의 체신부는 밀어닥칠「크리스머스·카드」공세에 대비, 전국적으로 1천여 명의 임시직원을 채용, 신속한 배달을 꾀한다고 하며 영국의 우정성도 오는 연말까지 약17만 명의 임시직원을 채용한다는 것. 이러고 보면「크리스머스·카드」도 이젠 큰「비즈니스」로 등장한 셈이다.
「크리스머스·카드」를 만드는 재료도 가지각색. 보통은 종이로 만들지만 때로는 헝겊·가죽·「셀룰로이드」로 만든 것도 있고 심지어 금속이나 목재·흙·「코르크」등으로 만든 것도 있다.
크기도 보통은 봉투에 넣기 좋도록 만들지만 극단적인 예외로 1929년 영국의 황태자가 받은 것은 쌀알에다 글씨를 새긴 것이었고 반대로 1924년 미국의 제30대 대통령「캘빈·쿨리지」가 받은 것은 21×33「인치」의 대판이었다.
최근에 이르러 외국의 경우「크리스머스·카드」는 자선단체에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만들어 파는 수가 많다.
그리고 서로가 좋은 질과 멋있는 도안으로 많이 팔려고 현대화가들의 손을 빌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해가 갈수록「크리스머스·카드」의 도안이 종교적인 것에서 민속적인 것으로 변해가고 있다. <금>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