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북한 위협에 중국만 보지말고 일본과도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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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미야 전 주필은 아베 총리가 우경화 발언을 자제해 지지율이 오른다고 분석했다.

와카미야 요시부미(若宮啓文·65) 전 아사히신문 주필은 일본의 대표적인 지한파 언론인이다. 2005년 ‘한국의 독도 영유를 인정하되 섬 이름을 우정의 섬으로 하자’는 제안을 아사히신문 칼럼란에 써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올 초 아사히신문에서 정년퇴직한 그는 부산 동서대 석좌교수, 서울대 국제대학원 일본연구소 객원연구원, 서강대 한국어연구원 학생으로 이달 초부터 한국 생활을 시작했다. 1981년 서울 유학 후 32년 만이다.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에서 그를 만났다.

 - 새로 시작한 한국생활이 어떤가.

 “서강대 한국어교육원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게 가장 큰 일이다.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매일 출석해 한국어 실력을 연마 중이다. 처음 한국에 온 건 1979년 여름 박정희 정권 말기였다. 81년엔 1년간 서울에서 유학했다. 지금 서울은 30년 전 그곳이 아니라고 착각할 정도로 매력적인 도시로 변했다. 일본의 보통사람들이 한국을 보는 시각도 크게 변했다.”

 - 한국 주요 인사들과도 친분이 있을텐데, 서울 와서 만난 사람이 있나.

 “김영삼 전 대통령을 만났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머리가 좋은 사람이니 잘할 것’이라고 평가하시더라. 지난해 대통령 선거 전에 박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을 예방했을 때 좋은 인상을 받은 것 같다.”

 - 한·일관계는 어떻게 변했나.

 “나는 전후 한·일관계를 4기로 나눈다. 1기는 이승만 정권 시절. 반일 기운이 매우 강했고, 일본은 과거사 반성이 없던 시기였다. 2기는 국교정상화 후다. 상호이익 면에서 일치했다. 한국은 경제성장을 위해 일본의 도움이 필요했고 일본은 북한과 중국을 빼면 한국과만 관계가 회복되지 않아 전략적으로 협력했다. 88올림픽을 전후한 민주화 시기가 3기였다. 일본의 역사인식도 변하기 시작해 총리들이 잇달아 사과했다. 지금은 4기로 접어들었다. 그간 봉인됐던 문제가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일본인들은 ‘우리가 언제까지 사과해야 하느냐’며 피로감을 드러내고, 한국은 ‘거 봐라. 일본은 반성할 줄 모른다’고 비난한다. 악순환이다. 옛날보다 한·일관계가 나빠진 것은 아닌데 조금 더 어려워진 것 같다.”

 -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한·일관계는 어떻게 전망하나. 한국에선 아베 총리의 우익 성향을 우려하고 있다.

 “아베는 사상적으로 우익이지만 동시에 현실적인 정치가다. 자민당 총재 선거 전에는 우익표를 얻기 위해 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를 뜯어고치고 싶다고 했다. 총선을 앞두고는 목소리가 좀 낮아졌고, 총리가 된 뒤에는 더 낮췄다. 아베의 지지율은 계속 오르고 있다. 아베노믹스 덕도 있지만 대놓고 우경화 발언을 하지 않아서다. 7월 참의원 선거까지는 이대로 갈 걸로 예상한다. 참의원에서 자민당이 과반수를 차지하면, 우익 성향을 드러내지 않겠냐는 우려가 있지만 그렇지 않을 거다. 물론 아베 담화를 낼 수도 있지만 시기적으로 아직 멀었다.”

 - 헌법개정 문제는 어떤가.

 “내용이 중요하다. 나도, 아사히신문도 반대하고 있지만 개헌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모두 우익은 아니다. ‘헌법9조가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실용적인 보수도 많다. 아베 총리가 창설을 주장한 국방군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들 중에서도 매우 오른쪽에 서있는 사람들이다. 국방군 창설로 국회에서 3분의 2 이상의 찬성표가 나오진 않을 거다. 만약 아베가 개헌을 하려면 내용을 훨씬 완화해야 된다. 무엇보다 연립정권을 구성하고 있는 공명당이 국방군에는 절대 반대하고 있다.”

 - 박근혜 대통령은 5월 방미한다. 한·일 정상회담은 언제 열릴까.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이 먼저 열릴 거다. 매년 5월쯤 열리는데, 올해는 한국에서 열릴 차례다. 위안부나 독도문제 등으로 현 상황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일본에 가는 것도, 아베 총리가 한국에 오는 것도 쉽지 않다. 박 대통령이 5월 초 방미 귀국길에 일본에 들르는 방법도 있다. 공식 방문 같은 형식에 연연하지 말고 이런 형식을 활용하는 것도 좋다.”

 - 북한의 도발이 계속되고 있다. 한·일관계 강화에 기회가 될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 북한의 위협은 한·일 공통의 위협이다. 한·일이 연계하고 협력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한국이 자꾸 중국 쪽만 바라보는 것 아니냐는 게 일본의 시각이다. 중국의 태도 변화는 환영할 일이지만 어디까지 진정성을 갖고 북한을 압박할 것인지 모르겠다. 미국도 부시 정권 때 처음엔 북한에 도발적으로 대응하더니 유화적으로 변했다. 오바마 정권에선 이란 등에 밀려 북한은 오히려 뒷전으로 밀려난 느낌도 있다. 한국과 일본은 미국과 중국에 우리의 입장을 어필해야 한다.”

 - 한국 젊은이에게 메시지가 있다면.

 “세계를 넓게 봐달라고 주문하고 싶다. 일본은 그렇게 위험한 나라가 아니다. 현 경제상황이나 국제질서에서 일본이 다시 군사대국이 되거나 침략을 하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과거 한국인들이 일본에 종종 ‘일본은 대국이니까 더 어른스럽게 행동하라’고 했다. 지금은 반대로 한국에 그런 주문을 하고 싶다.”

글=박소영·한영익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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